미디어 미학 발제문 : 발터 벤야민의 에세이 <사진의 작은 역사>

1. 들어가며

  오늘날 우리가 발터 벤야민의 논의에 다시금 주목하는 것은 일종의 역설이다. 왜냐하면 우리 삶을 둘러싸고 있는 이 모든 매체환경이 우리의 언어로 번역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의 이름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또한 기술 복제시대를 대표하는 발터 벤야민이었기에 더더욱.

  벤야민에 대한 관심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는 데, 먼저 기술 조건의 변화가 인간의 지각의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켜 놓았는가 그리고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이다. 물론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의 매체 미학적 질문이 예술론적 차원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그는 사진과 영화의 미학적 본질이 20세기를 결정짓는 새로운 지각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예견했으며, 실제로 세계의 모습은 일종의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이루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두 번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는데, 디지털이라는 오늘날 기술 조건의 변화 속에서 우리의 질문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성찰로서 말이다.

  물론 이러한 벤야민적 사유 그 자체를 오늘날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는 없다. 이미 언급한 바대로 벤야민은 기술 복제시대의 지각방식을 논의하였고 그것이 품고 있는 정치적 변혁 가능성에 대해서 고민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진이나 영화에 대해 정치적, 사회적 기능을 부여하고, 이를 위해 이미지의 한계를 문자와 텍스트가 보완하리라는 기대는 오늘날 이미지의 시대와는 결정적으로 화해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따라서 본 논의는 크게 두 가지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먼저 <사진의 작은 역사> 전반부에 기술된 내용을 토대로 사진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예술의 성격을, 나아가 인간의 지각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그러고 나서 같은 에세이의 후반부를 통해 이 말없는 이미지를 어떻게 우리의 언어로 번역할 것인지 또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사진의 발명과 아우라

  “찰나적 영상을 고정시키는 것은 철저한 독일의 연구결과가 말해 주듯, 불가능한 일일 뿐 아니라 이것을 해보려는 욕망자체가 이미 신을 모독하는 일이다. 인간은 신의 모습 그대로 창조되었다. 따라서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기계도 신의 이미지를 따라 잡을 수 없다. 사진을 찍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 기껏해야 신의 경지에 이른 인간만이, 그것도 일체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천상적 영감에 의해서 최고의 계시를 받는 순간 그의 천부적 재능의 높은 부름에 따라 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의 모습을 재현시킬 엄두를 감히 낼 수 있을까 말까 한 정도이다…….” - 1839년 독일 라이프치히 시보

  사진의 발명일로 알려져 있는 1839년 8월 19일은 사진이 처음 발명된 날이 아니라, 니엡스이래로 존재해왔고 또 사용되어온 ‘사진’이란 매체가 프랑스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날이다. 오늘날로 치면 프랑스 정부가 사진이란 발명품에 특허를 내준 날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초기 사진역사에 있어 이 검은상자(camera obscura)의 등장은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못했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오직 소수의 사람만이 사진기 앞에 서 있으려 했으며 예술가들에게 역시 사진은 풍경화와 초상화를 위한 밑그림 그 이상의 의미가 아니었다. 예외적이라면 사진에 대한 정부의 특허권을 주장했던 물리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아라고(Arago)만이 유일했는데 그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지닌 힘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진은 비가시적인 영역을 가시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탁월한 매체였으며 천체 물리학에서부터 문헌학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용될 수 있는 무궁무진한 능력을 지닌 도구였다.

  그렇다면 조금 더 자세하게 사진의 초기 형태에 주목해보도록 하자. 왜냐하면 그것은 초창기 사진이 대중과 조응할 수 없는 이유이며 동시에 벤야민이 발견했던 가능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사진의 초기 역사에 있어 최초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다게레오 타입(은판사진)은 이 방법을 고안해낸 루이 자끄 망데 다게르(Louis Jacques Mande Daguerre)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인화법이다. 상(像)을 만들어내기 위해 은판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인화하는 이 방식은 필름이라는 중간과정이 생략된 직접 양화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따라서 만들어진 은판사진은 복제가 불가능한 단 하나의 원본이 된다. 오늘날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운데, 이러한 면에서 벤야민의 텍스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말하는 사진과는 복제성 여부에서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다게레오 타입은 당시 발명된 다른 사진기법에 비해 선명하고 뚜렷한 인물사진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은판의 비싼 가격 그리고 장시간 촬영이라는 기술적 한계로 인해 일부 귀족계층이나 초기 부르주아지들의 초상화를 위한 대체물로 이용되는 정도로 그쳤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사진이 아우라를 파괴시킬 것’이라는 사진에 관한 벤야민의 테제에도 불구하고 초기 초상 사진에선 오히려 형용하기 힘든 분위기, 즉 아우라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벤야민 역시 데이비드 힐의 사진 분석을 통해 이를 인정하고 있는데 <뉴헤이븐의 어부의 아내>라는 사진에서 그는 ‘한 때 살았지만 오늘날에도 생생하게 살아남아 결코 ‘예술’ 속에는 완전히 병합되지 않는 그 무엇’을 느낄 수 있다고 고백한다. 사실 이러한 아우라의 체험은 기묘한 시간성의 병치로부터 기인한다. 대상이 존재했음을 알리는 동시에 부재하고 있음을 확증하는 초상사진의 특성이 일종의 환상적 체험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체험을 롤랑 바르트는 푼크툼(Punctum)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했는데, 그는 ‘여기와 옛날 사이의 비논리적인 결합’에서 비롯되는 마법적이고 무의지적인 체험이 푼크툼의 속성이라고 말했다.

  벤야민 역시 무의지적 체험에 주목했는데 그는 또 다른 사진 <칼 다우텐다이 부처>의 사진 속에 드러난 한 순간에서 이러한 무의식의 폭로, 즉 흘러가버린 순간의 평범함 속에서 미래적인 사건을 예고하는 장면을 발견한다. 이러한 무의식의 폭로는 당시 사진의 기술적 조건과도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오랜 노출을 필요로 했던 당시의 은판 사진은 피사체들로 하여금 오랜 시간 집중할 수 없도록 만들었으며 따라서 알게 모르게 무의식은 사진 위에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오를릭은 이를 두고 ‘이러한 사진이 지니는 단순성이 마치 잘 그려진 소묘나 초상화처럼, 뒷날의 사진들보다 보는 사람들에게 훨씬 직접적이고 오래 가는 감동을 줄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은 모델을 오랫동안 부동 상태로 있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그 사진이 얻게 된 표현의 종합에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오를릭이 말하는 ‘종합’의 의미이다. 그에게 종합이란 시간의 지속성을 통해 응축된 표현의 총체 이자 특이한 매질이며 시간성 그 자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진의 표면에는 일종의 아우라가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벤야민이 주목했던 초기 사진의 아우라를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겠다. 첫째, 복제가 불가능한 은판사진 원본의 아우라. 둘째, 대상이 품고 있는 시간의 아우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랜 노출이 만들어낸 지속성의 아우라로서 말이다.

3. 사진의 대중화와 두 명의 사진가 : 으젠 앗제와 아우구스트 잔더

  그러나 19세기 말, 대물렌즈라는 새로운 집광 기술의 등장하며 사진의 수용 방식은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자기현시의 대중적 열망과 결합한 기술적 진보는 초상사진 열풍을 만들어냈고 직업사진사의 자리엔 도처에서 장사꾼이 몰려들었다. 그것은 마치 제국주의적 부르주아지의 타락과 비견할만한 아우라의 붕괴였다. 벤야민은 이를 두고 아류의 화가들이 사진에 복수라도 하듯이 음화수정이라는 것을 보편화시켰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취미는 상업화로 변질되었다. 조잡한 수준의 사진첩이 유행하였으며 과거의 초상사진을 따라하는 부자연스러운 포즈가 대세를 이루었다.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는 기술적인 진보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초상사진은 사진역사 초기의 초상 사진을 그대로 답습하려 들 뿐이었다. 사실 이러한 포즈의 부자연스러움은 초상사진의 주요 고객이 된 부르주아지들의 몰 개성화, 비주체화와 맞물려 있었다. 제국주의적 확장과 상업자본과의 결탁을 통해 성장한 시민계급이야말로 익명성의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름 없는 존재였으며, 따라서 자신의 모습을 연출하라는 사진의 요구야말로 자기 소외를 들어내는 가장 적절한 주문이 되었던 셈이다. 사진사들은 수정기술과 고무판의 이용 그리고 인위적인 반사광선을 군데군데 비추는 것으로 사라져버린 아우라를 조작해내려 했으며 이것은 성장한 시민계급의 욕망과 부합하며 일대의 유행이 되었다. 어린 카프카의 사진은 이러한 당대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준다. 벤야민은 말한다. 이러한 박제화 된 열대풍경을 배경으로 서있는 한 소년의 우수에 젖은 표정이야 마치 기술적 진보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 세대의 무력감의 또 다른 은유라고.

  그렇지만 사진술을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사진사가 그의 기술에 대해 갖는 관계에서인 만큼 새로운 기술적 진보를 자신만의 것으로 성취해 낸 사진가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벤야민은 사라져버린 아우라를 복원하려는 조잡한 시도들 속에서 최초로 사진을 탈 주술화, 탈 아우라화 최초로 성취해 낸 이로 으젠 앗제를 지목한다. 이유는 그가 초상사진이라는 제의적 가치의 사진을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프랑스의 사진가 으젠 앗제는 1890년대부터 1910년까지의 파리와 파리의 주변 모습들을 약 4천여 점의 사진들로 남겨놓았는데, 그의 사진들은 당시로선 매우 보기 드문 파리의 풍경이었다. 이국적이거나 낭만적인 대상 대신 간략한 도시이름의 표제가 붙은 난간의 한 부분, 방화벽, 텅 빈 거리의 모습이 전부였다. 파리가 지닌 낭만적 분위기는 사라지고 대상으로부터 그것의 표피는 제거되었다. 이러한 면에서 앗제의 사진을 제일 먼저 알아본 이들이 초현실주의자들이었다는 점은 그리 놀랍지 않다. 그들은 앗제의 사진을 자신들의 잡지 <비푸르 Bifur>나 <바리에떼 Variete>에 싣곤 했는데 그들이 보기엔 앗제가 그려낸 파리의 풍경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지향하는 현실의 생경한 풍경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사진들은 정치적으로 훈련된 시각의 장을 깨고 오히려 생생하고 살아있는 세부의 감각을 일깨웠으며, 순간의 포착을 통해서 무의식의 층위를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더더욱 초현실적이었다.

  벤야민 또한 앗제 사진의 가장 중요한 효과로서 소격에 주목했다. 그는 인간과 세계 사이의 소격을 통해, 낯익은 것이 모두 탈락하고 따라서 사진이 결정적 세계의 부조리를 폭로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초현실적인 현실인식이 어떻게 혁명의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는 조금 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며 이는 벤야민의 또 다른 텍스트 <초현실주의> 논문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벤야민의 초현실주의론에 따르면 진정한 혁명의식이란 현실에 대한 추상적인 성찰 또는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신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집단적 차원에서 촉각적으로 발생하는 어떤 깨달음이다. 마치 그것은 하나의 건축물을 온 몸으로 체험했을 때 비로소 건축물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이루는 것과 같은 인식이다.

  현실의 집단적 체험이라는 점에선 또 한 명의 사진가를 거론할 수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사진작가 아우구스트 잔더이다. 아우구스트 잔더는 1933년 <우리시대의 얼굴>이라는 사진집을 발간하게 되는데, 이 사진집에서 잔더는 1910년대에서 50년대까지의 독일인들을 직업별, 계층별, 연령별 등으로 다양하게 분류하고 있다. 독일의 소설가 되블린은 잔더의 사진을 두고 ‘마치 비교해부학을 통해 비로소 자연의 질서를 가늠하게 되는 것 처럼 잔더의 사진은 인간을 이해하는 인간에 대한 비교 사진술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평가가 가능했던 것은 계급과 계층의 신화를 부정하고 오직 객관적 관찰과 엄정한 기록을 추구했던 잔더의 작업방식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었다. 물론 바르트는 <카메라 루시다>에서 아우구스트 잔더의 작업을 사회적 전형을 근거로 한 인종학적 분류라고 비판하고 있다. 사실상 대상의 본질을 드러내는 순수한 의미를 가진 ‘가면의 사진’은 사회에 불안을 주기에 충분할 만큼 비판적이지만 한편 그 사진이 효과적인 사회 비판을 진정으로 수행하기에는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동시에 우아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벤야민은 오히려 집단적 표상을 개인의 관찰력을 통해 발견하려한 잔더의 경험적 태도에 더 많은 점수를 부여한다. 그것은 마치 괴테가 ‘자신을 대상과 긴밀하게 일치시킴으로서 그 자체가 스스로 이론이 되는 그러한 섬세한 경험적 세계’를 주장했던 것과 같은 태도였던 셈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선 잔더의 과학적 사진이야말로 경험과 역사의식을 연결시키려 했던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일맥상통하는 기획이었다.

4. 예술과 사진 그리고 현실

  문제는 이러한 예술로서의 사진 이후의 세계였다. 앗제와 잔더 같은 일군의 창조적인 사진조차 사회적, 상업적인 제반 상관관계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일종의 물신적인 것으로 변모하고 말았다는 점은 벤야민에겐 뼈아픈 현실이었다. 마치 통조림통을 모아서 하나의 세계를 조립해 냈지만, 여전히 통조림통을 둘러싸고 있는 인간적 연관관계의 그 무엇도 파악할 수 없는 지경에 빠져버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벤야민은 이러한 물신화의 대응전략으로 ‘폭로와 구성’을 내세웠다. 브레히트가 말한 대로 상황이 너무나 복잡해졌기 때문에 단순한 현실의 재현은 현실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공장의 노동자들을 찍은 사진들이 조직과 계급의 모순을 밝혀줄 수 없는 것 처럼 말이다. 따라서 벤야민은 이러한 물화된 인간관계를 폭로하기 위해 그리고 무언가 인위적으로 조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함에서 하나의 대안으로 현실의 구성적 인식을 제안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추구했던 생경함을 창출하는 조립의 원칙을 근간으로 해서 말이다. 벤야민에게 그것은 러시아 형식주의 영화의 몽타주였고 독일 구성주의 사진의 폭로 전략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전략이 매우 언어적인 논리위에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몽타주의 충돌을 읽어내는 능력도, 구성주의 사진이 취하고 있는 프로파간다의 전략 모두 문자적이고 언어적인 기반 위에서 움직인다. 따라서 벤야민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진의 텍스트, 소위 오늘날의 캡션이라고 부르는 표제에 대한 강조는 그리 새로운 지적이 아니다. 심지어 벤야민은 앗제의 사진이 표제가 없다면 범죄 현장으로 오인할 수도 있다면, 그가 지지했던 사진의 가치를 텍스트에 의존하는 태도를 보여주기까지 한다.

  다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표제에 대한 벤야민의 인식이 단순히 표제의 설명적 기능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표제를 강조하는 벤야민의 태도는 더 이상 사진이 ‘보는 것’이 아닌 ‘읽는 것’임에 대한 선언이다. 앞서 벤야민이 아우구스트 잔더의 사진 속에서 집단적 표상과 더불어 함몰된 개인의 정체성을 읽어냈으며, 나아가 앗제의 사진 속에서 탈 인간화, 탈 아우라의 세계를 읽어낼 것을 요청한 것 처럼 말이다. 그렇지 않고선 이들의 사진 역시 이미지의 도취로 빠져버린 채 물신주의의 덫에 걸려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마치 미술사적 의미에서 초현실주의 운동이 저 하얀 벽으로 둘러쌓인 갤러리에서 안주했던 것 처럼 말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심각하게 말하고 있다.

  “‘미래의 문맹자는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사진을 모르는 사람이다.’라는 누군가 말한 적이 있는데. 자기 자신의 영상을 읽을 줄 모르는 사진가 또한 이에 못지 않는 문맹자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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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가나다순)

박주석. <사진 이야기>. 눈빛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반성완 편역. 민음사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조광희·한정식 옮김. 열화당
롤랑 바르트. <이미지와 텍스트>. 김인식 옮김. 세계사
필립 뒤봐. <사진적 행위>. 이경률 옮김. 마실가


서울독립영화제 2009


보고싶은 영화 list :

리브 디아즈의 <인디펜던시아> : 16일 12시 30분
라야마틴의 <필리핀 인디오에 관한 짧은 필름> : 17일 1시 00분 
장률의 <이리> : 18일 2시 30분

나비 혹은 나방의 꿈 : <양들의 침묵>을 보고...

<양들의 침묵>에 등장한 해골 박각시 나방

나는 나방을 무서워한다.1) 저  둔탁한 날개짓도, 몸집을 상상케하는 저돌적인 비행감각도 모두 혐오스럽다. 아니 정확히 말해 두려운 거다. 하지만 무엇보다 공포스러운 것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광란의 움직임이며 동시에 나를 노려보는 저 눈빛이다. 그러니 조나단 드미의 <양들의 침묵>을 보며 나방의 상징 따위는 애초부터 생각할 겨를 조차 없었다고 고백해야겠다. 단지 나방이 만드는 푸드득거리는 소리의 환영만이 나의 모든 감각을 옳아매고 있었을 뿐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군입대를 앞둔 20살 어느 날의 일이었다.
문득 육군에 가게되면 산악지방의 특성상 나방의 공격 속에서 나는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도시 나방과는 또 다른 산촌나방, 농촌나방의 급습으로 인한 신경쇠약 바로 그것으로서 말이다. 그래서 군입대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해군에 자원 입대 했다. 육군에 비해 무려 2개월이나 긴 군생활이었지만 바다 한 가운데로 나가야만 나방을 마주치지 않을 것같은 생각에서였다. 실제로도 육상근무 대신 선상근무를 지원했고 이로서 나방의 공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듯 했다. 하지만 역시나 인생은 마음먹은대로 진행되는게 아니었다. 육상에 정박해 있을 때면 크고 작은 수 십종의 나방들이 흘수선 옆 면에 띠를 이뤄가며 붙어있었고 여름이면 좁은 격실의 불빛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는 것이 나방의 무리였다. 그러니 2개월의 희생 같은 건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3류 꽁트 같은, <정오의 희망곡>이나 <교통방송>사연소개에나 어울릴법한 시시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당시엔 참으로 절실했고 절망스러웠었다.

<양들의 침묵. The Silence of the Lambs>
조나단 드미. 1991
 

그럼 조금은 차분하게.... 나방의 공포를 떨쳐내고 조금 전 언급했던 영화 <양들의 침묵>이야기 해보도록 하겠다.

버팔로 빌이 이미 몇 차례에 걸쳐 여자들의 피부를 벗기는 데 물이 오를 무렵 FBI 예비 수사관 스털링 클라리스가 수사에 참여하게 된다. 크로포드 국장은 그녀를 통해 유능한 정신분석가이자 인육을 즐기는 살인마 한니발 렉터 박사의 프로파일링 내용을 얻어내고자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범행은 더욱 정교해지고 상원의원의 딸 마저 납치를 당하며 사건은 반드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지경에 이르고만다. 물론 몇 개의 단서들이 발견되는 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나방이었다. 해골 박각시 나방 (아케론티아 스틱스 Archerontia styx)이라는 학명의 '담배 뿔 나방' 또는 '죽은 자의 나방'인데 이 나방은 여러 의미에서 매우 상징적이다2) 해골을 연상케하는 외모를 차치하고라도 일단 나방은 여성의 피부를 통해 옷을 해 입음으로서 여자가 되길 꿈꾸는 버팔로 빌의 욕망을 의미한다. 특히 병원에서 성전환 수술을 거부당한 버팔로 빌은 여성의 피부를 벗겨 자가 트랜스 섹슈얼을 이루려 하는데 이는 곧 나방의 변태metamorphosis와 닮아 있다. 심지어 그가 거울을 통해 스스로의 욕망을 확인하는 순간에도 나비 혹은 나방의 날개 이미지는 반복적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해야 할 욕망이 있다. 변태 metamorphosis의 욕망이 오직 연쇄 살인마 '버팔로 빌'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욕망은 성공한 FBI 수사관이 되고자 하는 스털링의 욕망이며 사건을 서둘러 해결하고자 하는 크로포드 국장의 욕망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감옥으로부터 탈출해 자유를 꿈꾸는 한니발 렉터의 욕망 역시 변태를 통한. 즉, 성충이 되어서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따라서 희생자의 입 속에서 나온 해골 박각시 나방의 번데기는 각자의 욕망이 투영된 매우 압축적이고도 단단한 코어 core인 셈이다. 그런데 더불어 눈여겨 볼 장면 하나가 있다. 바로 번데기의 표피를 벗겨내는 장면이다. 이미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이 맨질맨질한 표피를 '우유에 생긴 얇은 막'에 비유하며 그것이 곧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은 잉여의 증상임을 지적한 바 있다. 따라서 그것을 걷어내고 축출하는 행위야 말로 주체는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분리되는 동시에 새로운 상징계로 다가서는 행위가 된다. 이러한 분석은 영화 속 스털링 수사관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홀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던 어린 스털링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씻어낼 수 없는 정신적 외상으로 남게 되는데, 그녀의 꿈 속에서 양들의 끝없는 외침이 그것이다. 스털링의 트라우마는 한니발 렉터에게 또한 분석되는데, 수사에 대한 그녀의 끝없는 집착은 결국 양들의 외침을 침묵으로 돌려놓고자 하는 그녀의 심리적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아버지의 죽음을 떨쳐내고자 하는 그녀의 욕망도 함께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녀가 나방의 얇은 막을 벗겨내는 장면을 통해 스털링이 사건의 진실에 한 발 더 다가서는 한 편, 잉여의 그림자로 남아있던 아버지를 상징적으로 떨쳐내고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자, 그럼 나방에 대한 또 하나의 공포를 말해보기로 하자.

앞서 나방이라는 존재가 주는 두려움에 대해 나는 '예측할 수 없음' 그리고 '그것의 날개에 그려진 두 눈동자로부터의 섬뜩함'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이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대다수의 나방들은 날개 위에 눈동자 무늬 또는 원형의 물방울 무늬를 갖고 있다.3) 생물학적 관점에 따르면 이러한 무늬는 포식자에게 잡혀먹히지 않으려는 보호색의 변형이자 의태화의 증거이다.4) 물론 라캉에게 이것은 불충분하다.나방 날개에 그려진 눈동자가 오직 적자생존의 작동원리 만을 설명하는 것이라면 이는 너무나 단순하고 환원론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라캉에게 이러한 방식의 의태는 시선과 응시를 설명해주는 가장 적절한 폭로의 공간이다. 이미 우리는 시선이 주체의 것임을 그리고 응시가 타자로부터 나로 향한 숨겨진 눈길임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논리에서 나방날개의 무늬는 말 그대로 타자의 응시 속에서만 드러나는 얼룩이다. 조금 더 쉽게 말해보자. 홑눈이 생생한 눈동자로 변신하는 것은 오직 포식자의 시선 속에서이다. 나방을 잡아먹지 않는 포식자들의 눈에는 이것은 '눈먼'것, 즉 형태 없는 얼룩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얼룩은 오직 욕망의 주체에게만 '응시'를 되돌려 줄 수 있으며 얼룩이 자신을 맞받아 응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욕망의 주체뿐이다.5)

그렇다면 이것 또한 영화 속에서 찾아질 수 있을까?
사실 대답은 간단하다. 그녀는 프로파일러이기 때문이다. 프로파일러란 범죄자의 심리를 자신에게 투사함으로서 사건을 해결하거나 예방하는 이들을 말하는 데 스털링은 사건을 위해 버팔로 빌이 되기도 또 한니발 렉터가 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도 몇 가지 장면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데 먼저 렉터 박사가 옆 방의 동료를 자살로 이끌었다는 소식에 그녀는 묘한 웃음을 짓고만다. 그의 죽음을 종용한 렉터의 웃음으로서 말이다. 더 결정적인 시퀀스는 렉터가 이송되기 직전 다급하게 그녀를 부르짖는 장면에서이다. 사건파일이 건네지는 순간 둘 사이의 신체적 접촉은 그 어떤 장면보다 에로틱하게 다가오며 동시에 그녀와 렉터가 서로의 시선을 교환하는 순간이기도 하다.6)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공포스럽다해도 이 영화 <양들의 침묵>의 마지막 시퀀스, 버팔로 빌과 스털링이 벌이는 사투만큼 경악스럽지는 않다. 왜냐면 지하실에 불이 꺼지고 버팔로 빌의 적외선 투시안경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 우리의 시선은 정확히 버팔로 빌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아니 그의 시선이 우리의 것이 된 것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어했도 더 많은 것을 알고싶어 했던 관객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었던 히치콕 처럼말이다. 조나단 드미 역시 관객에게 버팔로 빌의 안경을 씌우고 그녀를 향해 손을 뻗어보기를 권유한다. 그리고 관객의 관음증이 절정에 달했을 때....탕!탕!탕!탕!탕!탕!.... 6발의 총알을 맞고 누워있는 이는 여인들의 가죽을 벗기던 우리 자신..아니 버팔로 빌이다. 그리고 나방을 두려워했던 한 사내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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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나는 '나방'이라고 하기 보다는 '나방이'라고 부르는데, 예를 들어 주격조사 '은/는/이/가'를 붙일 경우 '나방이'가 혹은 '나방이'는 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면 내게 있어 나방이는 왠만한 인간보다 더 큰 존재물이며 놀라운 실존적 힘을 발휘한다. 

2) 나방은 내러티브 상으로는 FBI 수사의 혼선을 빚게 끔하며 스털링에게는 첫 번 째 희생자의 옆 집 남자가 버팔로 빌을 확신하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단서로 기능한다. 

3) 홑눈 (oceil)이라고도 한다.

4) 하지만 안타깝게도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보호색 혹은 무늬는 포식자에게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예를 들어 같은 종의 생물체가 보호색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생존율은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5) 슬라보예 지젝.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 김소연 옮김. p.251

6) 이 밖에도 스털링을 바라보는 남성 보안관, 동료들의 시선은 어떤 의미에선 그녀가 감당해야 할 응시이며 이 또한 중요한 해석의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확장 영화 & Malcom Le Grice

  1970년 진 영블러드(Gene Youngblood)는 저서 <확장영화 Expanded Cinema>를 통해 영화와 비디오를 이용한 새로운 경향을 주목했다. 그는 홀로그래피 시네마, 멀티플 프로젝션, 컴퓨터 필름, 매체실험적인 모든 상영에 형태에 대해 확장영화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특히 백남준의 비디오 작업을 확장영화의 한 양식으로 파악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다소 역사적인 맥락을 포함하여 이해해 보자면, 확장영화란 1960/70년대에 걸쳐 영미권와 유럽에서 다양하게 시도된 비규점적 형태의 영화 및 비디오 작품들을 혹은 이벤트로서의 멀티 스크린, 갤러리 프로젝션, 라이브 퍼포먼스까지를 일컫는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러한 확장영화가 갖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오늘날의 뉴미디어 아트는 그 자체로 기술과 예술의 결합을 탐색하고 있으며 이러한 고민이 당대 예술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 확장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확장영화의 예술가이자 이론가이기도 한 말콤 르 그라이스는 "오히려 확장영화가 아닌 게 무엇인가가 문제다."라고 말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이처럼 당대의 확장영화가 품고 있던 고민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효하며 특히나 디지털 혁명의 시대 속에선 더욱더 큰 화두로서 다가온다.  


베를린 말 / Berlin Horce
말콤 르 그라이스 / Malcom Le Grice
UK l 1970 l Color l 16mm


  Malocom Le Grice (1940~ / 영국)  

  말콤 르 그라이스는 1970년대 출간된 영블러드의 확장영화에 대한 논의가 테크놀로지의 혁신과 예술적 의미의 관계맺는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예술담론이 부재하다고 비판하면서, 복잡한 테크놀로지가 생산한 상징적 사물들은 서사적 화법에서 작용하는 상징적 언어와 같은 구성물과 구별되는 테크놀로지 언어의 확장된 가능성에 주목한다. 특히 1960년대의 말콤 르 그라이스는 본격적으로 세 대의 프로젝션을 이용한 확장영화를 연이어 선보이는데 그것이 Castle 1 (1966), Horror Film (1971) 그리고 Threshold (1972)이다.

  그의 초기작에서부터 줄곧 발견할 수 있는 비디오와 멀티 미디어 그리고 컴퓨터가 생성하는 이미지이며 이후 르 그라이스 개별적이고 이질적인 멀티 미디어를 동시에 이용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르 그라이스는 구조영화의 흐름 속에 머무르지 않고 한 발 짝 더 나아가 퍼포먼스의 영역을 첨가하는 데 <베를린 말> 역시 세 대의 멀티 프로젝션을 통해 색채와 조형적인 실험을 동시에 하고 있다. 1972년에 발표한 그의 저작 <Real Time/Space>에서는 관객과 즉각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참여적인 특성을 작업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꼽고 있는데 <Horror Film 1>은 3대의 프로젝션으로 만들어낸 가장 역동적인 작업이었다. 스크린 앞에 서서 팔을 뻗은 상태로 서 있는 동안 3개의 프로젝션은 3색 이상의 화면을 만들어내고 3개 이상의 그의 그림자가 복잡한 패턴과 기하학적 문양을 만들어내며 관객에게 특별한 체험의 순간을 제공한다.
 
  르 그라이스의 추상적인 이미지들과 음악과의 관계 역시 빼놓을 수 없는데 최근에는 Brian Eno와 즉흥음악 연주 그룹인 AMM과 작업을 같이하고 있다. Arbitrary Logic (1988)의 경우 디지털 프로그래밍은 추상적인 색채의 패턴과 음악 톤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다소 명료하지는 않지만 음악구조는 르네의 편집에 추상성을 부여하거나 재즈의 즉흥연주적인 기법을 연상케한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통해 무엇을 보는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Las Meninas>만큼 수많은 예술가들과 이론가들에게 영감을 준 작품이 있을까? 고야와 드가, 마네는 이 작품의 매력을 자신의 그림 속에 표현하기도 했으며, 피카소는 아예 이 작품에 대한 오마쥬로 여러 편의 연작을 그리기도 했다. 또 미술사가들은 <시녀들>의 원근법을 분석하며 이 작품이 지닌 진정한 매력의 원천을 밝혀내고자 했으며, 푸코는 그의 대표작 <말과 사물>의 제1장 제1절을 아예 작품 분석으로 채웠다. 그렇다며 이렇듯 작품이 수 많은 영감 제공하고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했던 이유란 무엇일까?

  우선 많은 미술사가들은 이 작품의 사실성에 주목했다. 마치 스냅사진을 찍은 것 같은 놀라운 기교와 표현력을 근거로 들면서 말이다. 또 램브란트나 고야의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빛의 마술적인 힘 마저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데 충분히 합당한 지적이다. 실제로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분석해보면 방안으로 새어들어오는 빛이란 단 두 개 뿐이다. 화면 오른 쪽 창 밖의 빛이 그 중 하나로, 그것이 방 안 전체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면, 또 다른 빛은 남자가 서있는 후경의 빛이다. 실내로 들어오는 강렬한 빛은 일종의 시각 환기를 이루는데, 이는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화면 전체를 팽팽하게 긴장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만으론 이 모든 논쟁을 아우르기란 불충분하다. 오히려 작품의 진짜 매력은 암부로부터 그리고 화면의 구성적 측면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논쟁은 과연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원근법적 구도를 충실히 따랐느냐의 여부부터 시작된다. 스나이더와 코헨은 공동저작 <reflections on Las Meninas>에서, 그림 속 천정과 벽 사이의 사선을 근거로 이 작품이 완벽한 원근법적 구도를 따르고 있음을 주장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더할나위 없이 정확한 사진적 재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미술사가 모핏 역시 이 그림이 벨로라는 장치와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해 정확하게 크기와 원근법이 계측되었을 것이라고 스나이더와 코헨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와는 다르게 이 그림이 오히려 원근법적 재구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주장하는 반대 의견도 있다. 미술사가 쉬미터는 소실점을 이용한 원근법의 재구성이 다분히 자의적인 해석에 근거하고 있음을 주장하며 정확한 소실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실제로 이 그림의 청소작업이 이루어졌을 때 오른 쪽 벽의 베내기 부분이 몇 센티 높았는데, 이를 통해 많은 학자들은 벨라스케스는 작품이 원근법을 통해 정확하게 구성되기보다는 오히려 작가의 직관에 의해 그려졌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이라면 우리는 벨라스케스가 원근법의 의도적 변형을 통해 또 다른 무언가를 말하려 했던것은 아닐지 조심스레 추측해 볼 수 있다. 

  먼저 주목할 만한 작업은 푸코로부터 이어지는 후기구조주의자들의 논의이다. 푸코와 일군의 이론가들은 작품 분석을 통해 오히려 이 작품의 외연을 확장시켰다. 앞선 논의들이 <시녀들>의 내재하는 의미와 미적 형식을 밝히고자 몰두했다면, 푸코로 시작된 많은 논쟁들은 오히려 작품 자체를 시대 밖으로 끌어내 이것이 지니는 의미를 재차 물었다. 
 
  그러기 위해선 크게 두 가지 해석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데, 우선적으론 푸코의 분석이다. 사실 푸코의 기획이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분석을 통해 고전주의 에피스테메를 밝히는 것에 다름 아니었는데. 그는 주체가 사라진 재현, 곧 사물의 질서를 외부에서 부여하는 고전주의 정신이 이 작품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푸코의 작품 분석을 요약해보자. 푸코는 이 그림에서 화가가 그리고 있는 그림, 화가가 보고 있는 모델. 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음에 주목한다. 실제로 벨라스케스 자신의 모습은 그림에 열중하기 보다는 한 발자욱 캔버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또 거울 속 왕과 왕비는 유령처럼 흔적으로만 존재하고 있다.  

  화가는 자기의 캔버스로부터 조금 물러서 있다. 한순간 그는 그가 그릴 대상을 쳐다본다. 어쩌면 그는 아직 한 획도 긋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는 마무리 작업을 더해야 할 것인지를 고려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셸푸코 <말과 사물> p.25 

  푸코가 말했듯이 이러한 기교들에는 어떤 교묘한 체계가 존재한다. 그것은 화가의 시선,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그리고 공주 마가리타의 시선을 일치시키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 시선의 중심에는 유령처럼 존재하는 거울 속 왕과 왕비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시선의 일치 덕분에 화가 벨라스케스는 왕과 왕비의 시선을 소유할 수 있으며 나아가 관람객의 위치에 설 수도 있다. 관람갬 역시 마찬가지이다. 화면 외부에서 그림을 관람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공통의 시선을 갖음으로서 우리는 왕과 왕비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그림을 그리는 벨라스케스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렇듯 시각 주체가 확연히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재현하는 표상은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캔버스를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림 곳 벨라스케스일 뿐이며, 그 누구도 전지적인 관점에서 화면을 바라볼 수 없다. 심지어 (가장 드러난 형태로서) 시각의 주체라고 말 할수 있는 왕과 왕비의 모습은 유령과 다름없다. 푸코가 주목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대조를 통해 이 그림에는 본질적인 공백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 부재는 화가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기교이다. 그러나 이 기교는 매우 직접적인 또 다른 공백을 은폐하고 있는 동시에 지시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그림을 응시하거나 구성할 때 화가와 감상자의 공백이다. 아마도 이 그림에서는 다른 모든 표상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응시하고 있는 대상의 깊은 비가시성은 결코 응시하고 있는 사람의 비가시성과 분리될 수 없다... 미셸 푸코 <말과 사물> p.39

  따라서 푸코는 이 그림에는 재현의 근원이 빠져있으며, 이런 까닭에 이 그림은 주체없는 재현, 즉 가장 순수한 형태의 재현이 된다. 이는 고전주의 시대정신의 반영이다. 왜냐하면 고전주의에서 인간이란 신이 창조한 피조물이자 사물의 질서 가운데 하나이며, 이 존재의 장에 있는 사물들을 개념적 도구인 말을 가지고 정렬하는 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물의 세계의 밖에서 '통일시키는 주체'는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발생한 근대 인본주의 에피스테메에서 탄생한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인간은 사물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특권적이고 초월적인 주체로 태어나고 스스로를 유한한 경험적 대상으로 연구하게 되며, 그 결과 고전주의 시대에 불가능했던 인문과학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푸코에게 있어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고전주의 시대의 재현. 즉 가장 순수한 재현의 재현인 셈이다. 
  하지만 이제부터 논의할 라캉은 푸코와는 다르게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성을 가르는 원인이 에피스테메가 아닌 시선과 응시의 분열임을 주장하게 된다. 라캉은 자신의 11번째 세미나인 <정신분석의 네 가지 개념>에서 시각적 영역에서의 주체의 분열은 눈(eye)과 응시(gaze)의 분열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는데, 눈이 주체의 시점이라면 응시는 주체를 바라보는 타자의 시점, 즉 주체가 보여지는 시점을 말한다. 사실 다소 모호하게 느껴지는 이 '응시'라는 개념은 이미 사르트르에 의해 희미하게나마 논의된 바 있다. 그는 저작 <존재와 무>에서 주체의 봄에 선행하는 타자의 응시를 열쇠 구멍을 들여다보는 나를 놀라게 하는 타자의 발걸음 소리에 비유했다. 즉 은밀한 욕망을 충족시키려던 나를 놀라게 하고 부끄럽게 하는 타자의 시선이 바로 '응시'라는 것이다. 물론 실존성 여부에 있어 사르트르와 라캉의 응시는 동일하게 이해될 수 없다. 그럼에도 라캉의 응시와 사르트르의 응시가 갖고 있는 타자성, 관계성은 매우 유사하고 또 동일한 효과를 가져온다.      

  그렇다면 시선과 응시라는 개념을 통해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어떻게 분석될 수 있을까? 라캉에게 있어 뒤돌려진 캔버스는 모든 욕망을 자극하는 작동기제이다. 그리고 실제로 캔버스에 무엇이 그려져있는가를 상상하는 것이 이 게임의 규칙이라는 것이다. 즉, 푸코가 화가의 시선으로 옮아가는 관객의 시선을 발견해냈다면, 라캉은 화가의 욕망으로 전이되는 관객의 욕망을 밝혀낸다. 소위 주체가 타자의 욕망을 매개로 태어난다는 주체의 변증법을 찾아낸 셈이다. 더 쉽게 말해보자. 주체는 자신이 차지할 수 없는 타자의 지점에서 자신을 보고자하는 욕망을 갖게 되는 데, 벨라스케스에게 그것은 저 문 뒤에 서서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남자이며, 관객들에겐 그림 속의 벨라스케스가 된다. 그리고 우리의 욕망이 투여된 이 기묘한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즉 그림 속 벨라스케스는 관람객인 우리 자신을 응시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응시의 마주침이 우리 자신에게 무척 낯설고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사실 라캉 이전에 이러한 두려움 즉, 타자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시선의 욕망이 자아로 투사되는 과정은 프로이트에 의해 선취된 바 있다. 관음증이 결국 대상을 포기하고 주체의 신체를 욕망하게 되며 끝내는 자신을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라캉의 응시란 프로이트가 말한 노출증 변형인 셈이다. 타자에 대한 시선이 내면으로 투사되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프로이트에게 노출증이 욕망의 적나라한 전시라는 측면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면, 라캉에게는 이러한 응시가 오히려 자아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부터 기인한다는 것이다. 즉 또 다른 자아의 존재를 느끼는 일종의 도플갱어적 두려움이라는 설명이다. 

  결론적으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서 무엇을 보는가는 말그대로 자유이자 선택의 문제이다. 그것을 통해 고전예술의 미감을 느끼는 것도, 고전주의 시대의 에피스테메를 발견하는 것도 그리고 시선과 응시의 분열을 찾아내는 것이 모두 유의미한것 처럼 말이다. 그러나 다시 이렇게 말해본다. 당신이 무엇을 발견하듯, 당신의 시선은 이미 저 캔버스 위에 당신의 또 다른 투사물을 그려내고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벨라스케스를 통해 진짜 발견하고 싶던 그것이라고.

자장가. 그것의 언캐니함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이 있다. 그것은 '잠'이자 '안식'이며 '끝나지 않을 꿈'이다.

'우리는 인생의 3분의 1을 잠으로 보낸다.'는 이 자조적인 고백 속에서 '잠' 그 자체에 대한 양가적인 태도를 발견하게 된다. 무기력함, 통제할 수 없음 그리고 미지의 공간의 동의어로서 말이다. 전기불의 발명자인 토마스 에디슨은 '잠은 시간의 낭비'라고 말하기 까지 했는데, 그에게 잠이란 정체된 생산력이자 빛으로 몰아낼 대상을 의미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도 또 자연적으로도 잠은 거스를 수 없는 과정이자 숙명처럼 따라 붙는 동전의 다른 한 면이다. 심지어 잠을 거르게 되면 인간은 자신이 소유했던 세계의 절반마저도 잃게 될 것이 분명하니.

물론 역사적으로 잠에 대한 묘사가 매번 부정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셰익스피어는 ‘잠이야 말로 인생이라는 축제의 주된 양식이며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향유’라고 말했으며 인류의 가장 오랜 서사시라고 일컬어지는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는 왕의 꿈 은 제왕이 될 것임을 알려주는 예지몽이었다. 의학적인 차원으로도 잠은 인체와 정신을 재생시키는 중요한 주기인데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수면 중에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성장 호르몬은 조직을 회복하고 면역체계를 강화시킨다.

하지만 이와 같은 놀라운 생산 능력에도 불구하고 잠은 주로 죽음의 은유로 사용되어왔다. 기원전 8세기 헤시오도스는 '죽음의 형제, 곧 잠을 가진 밤.'이라는 표현으로 잠과 죽음을 하나의 고리로 연결했으며. 16세기 영국의 시인 사무엘 다니엘 또한 잠에 대한 우리의 양면적인 태도를 다음과 같이 : "마력으로 근심을 잠재우는 밤이여, 캄캄한 밤의 아들이여, 고요한 어둠에서 태어난 죽음의 형제여' 라고 말했다. 최근 읽은 남진우의 시 또한 이렇듯 잠과 죽음의 유사성을 매혹적이고 동화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그럼에도 후반부에 드러난 반전은 무척 섬뜩하다.


먼 산 먼 길                                           남진우


어린 시절 텅 빈 마루에서 홀로 잠이 들면
호랑이 한 마리 산에서 내려와 나를 물고 갔다 한다
고요한 한낮 지나 서서히 해가 저물녘
깊은 잠에서 깨어나 사방을 두리번거리면
호랭이한테 물려 갔다 돌아온 게지
식구들은 웃으며 말하곤 했다

내가 잠이 든 다음
살그머니 수풀을 헤치고 내려온 호랑이 한 마리
시내를 건너고 신작로를 가로지르고
비좁은 골목을 돌고 돌아 살짝 열린 대문을 지나
햇살 눈부신 저편 마루에서 곤히 자고 있는 나를
저으기 바라다본 것일까

뜨거운 호랑이 아가리에 물린 채
몇 개의 산과 들을 뛰어넘는 동안에도
나의 깊은 잠은 끝없고
오직 지나가는 바람만이 귓가에 윙윙거릴 뿐

제 집 동굴에서도 여전히 잠만 자는 나를
호랑이는 이리 굴려보고 저리 굴려보고
혀로 핥아도 보았다가
너무 심심한 나머지 다시 돌려주기로 한 것일까

호랑이 입에 물려
집으로 오는 동안
화르르 져 내리는 꽃잎 속에 아슴아슴 먼 길이 떠오르고
마악 대문을 열고 마실 나서는 어머니가
에구머니나 놀라 외치는 소리에 옛다 내던지고
호랑이는 다시 먼 산으로 가버린 것일까

지금도 잠이 들면
나를 데려가기 위해 다가오는 호랑이의 나직한
발소리가 들린다 내 귓가를 맴도는 더운 숨결 내 몸에 와 닿는
타는 눈빛 내 잠 속에서 한 껏 아가리를 벌리고
단숨에 나를 삼켜버리는
저 호랑이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잠에 대한 양가적인 태도가 어린이들을 재우기 위해 부르는 노래, ‘자장가’ 속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잠들기 싫어하는 어린아이들에게 일종의 최면적 효과를 주는 것이 자장가라고 한다면, 그 속의 내용은 영원한 안식에 대한 동경과 공포가 자리하고 있다. 마치 태초의 자궁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무가의 한 구절처럼 말이다. 우리네 할머니들이 불러 주었던 자장가를 떠올려보자.


은자동아 금자동아 이제 그만 울거라.
강아지야 짖지마라.
고양이야 우지마라.
도깨비야 오지마라.
우리 아기 잘잔다.

이 반복적이고 최면적인 노래는 매우 단조로운데, 우스개 소리에 따르면 이 반복의 최면성은 전 세계 자장가 대회에서 1등을 할 정도라고 한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단조의 선율이 무가에서 비롯되었으며, 무한 반복의 최면상태를 통해 황홀경으로 나아가는 형식적 과정은 무가의 그것과 매우 닮아있다. 실제로 제주도의 많은 무가들이 형식적으로나 주제적인 면에서 잠노래 (자장가)로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서구의 자장가에서 조금 자세하고 학술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아무래도 더 그로테스크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인데 <Baby, baby, naughty baby>가 대표적이다. 18세기 후반부터 영국에서 불렸다는 이 자장가의 가사는 지금으로서도 받아들여지기 힘든 잔혹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악몽을 유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Baby, baby, Naughty baby>

아가, 아가, 나쁜 아가
조용! 요 시끄러운 녀석아.
당장 조용하지 않으면
보나파르트가 이 길로 지나간데

아가, 아가, 그는 거인이야.
루앙의 철탑처럼 크고 시커먼
철탑에 기대어 아침식사로, 저녁식사로
나쁜 사람들을 매일 잡아먹는데.

아가. 악.. 네 소리가 들리면
집안으로 뛰어들어올꺼야.
당장 네 다리를 찢어 죽일거야.
고양이가 쥐를 찢듯이 말야.

널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려
곤죽이 되도록 널 때릴거야.
널 먹고, 먹고, 또 먹어,
한 입에 아작. 또 한 입에 쓱싹.


알 수 있다시피 여기서 말하는 보나파르트는 나폴레옹을 지칭한다. 우는 아이를 호랑이가 잡아간다는 우리네 설화와 많은 점에서 유사하며 특히 말을 듣지 않는 어린아이를 괴물로서 처벌하고자 하는 훈육의 시나리오는 어떤 측면에서 매우 억압적이다. 우리나라의 <망태할아버지 설화>에서도 마찬가지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재미있는 것은 최근 <망태할아버지 설화>를 바탕으로 쓴 한 동화책에서는 훈육을 거부하고 망태할아버지의 공포를 능동적으로 극복하는 아이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고 한다.

다시 자장가로 돌아와 한 장의 음악 앨범을 주목해본다. <If on a winter's night>이라는 영국의 뮤지션 스팅의 최신작이다. 그 또한 자장가가 가진 이중적인 성격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는데, 북클릿을 통해 그는 자장가가 듣는 사람을 안심시키면서도 동시에 불안하게 만드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피터 워릭이 작곡한 스코틀랜드 자장가 ‘발룰라로우’는 가사의 측면에서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는 의도가 두드러지는데 비해, 교회선법음계 멜로디와 저음부가 맞대면하는 Eb음에서는 곡 자체에 어두운 조짐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장가를 통해 전해지는 많은 구전설화들은 그 자체로 마법적이고 어두운 밤의 이야기들이니 더더욱.

이상에서 우리는 자장가 속에 담겨진 죽음과 어두운 세계에 대한 은밀한 욕망을 알아보았다. 일종의 아이러니이다. 가장 안전한 공간에서 불려지는 노래. 그것도 악몽을 두려워하는 아린이들을 위해 불려지는 노래 속에 이미 내재적으로 죽음의 매혹과 공포가 동시에 손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측면에 또 다른 이름을 붙여볼 수 있겠는데. 자장가야 말로 언캐니 함이 아닐까. 익숙한 공간이 낯설어 지는 것. 삶 속에서 죽음을 찾아내는 아이러니함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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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디슨과 셰익스피어에 관해서는 <밤으로의 여행>의 저자 크리스토퍼 듀드니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2) 무가와 잠노래에 관한 유사성 부분은 예전에 제주도 무속인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취재할 때 알았던 사실입니다. 학문적인 근거가 취약하나 일반적 통념으로도 무가와 자장가는 여러가지 점에서 유사하다고 합니다.
3) 영국의 자장가 <Baby, baby, Naughty baby> 부분은 http://blog.naver.com/sylplus?Redirect=Log&logNo=70018730677에 더욱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또한 블로거 sulplus는 이러한 자장가가 일종의 훈육의 알레고리로 기능하고 있음을 강조하는데 이 또한 재미있는 글이므로 링크를 타서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제1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

학교 선배가 기획한 영화제
<서울국제건축영화제>에 
스텝으로 참여하게되었습니다.  

특히, 이번 영화제에서 만나고 
알게된 사실들이 무척 흥미롭고 
또 지적, 감정적으로 많은 자극이 
되었습니다.

건축과 영화가 
프로덕션 디자인과 미장센이라는
관계로 환원시킬 수 없는 것처럼 
이 둘간의 창조적 작업의 욕망은 
거울처럼 닮아있다는 생각입니다.

HAF (Host Architects' Forum)에서 
보았던 대가들의 작업도 놀라웠으며
그것은 제 작업에 대한 반성으로
돌아왔습니다. 

쓰고나니 굉장히 수행적인
아르바이트를 한 셈입니다.



09. 11. 23
서울국제건축영화제를 마치고.... 


The Archaeology of the Modern Grotesque 발제문 일부

Modern Art and the Grotesque
:  David Summers의 The Archaeology of the Modern Grotesque를 중심으로 발제문.

<시녀들 Las Meninas>
Joel Peter Witkin
1987. Photography


그로테스크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 수 없을지라도 이 글에서 사용하는 그로테스크의 개념적 정의는 1987년에 뉴욕 Alternative Museum에서 열린 전시 <Repulsion: Aesthetics of Grotesque>에 많은 부분을 빌려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 전시가 그로테스크란 용어를 왜 이렇게 모호하면서도 동시에 확정적으로 사용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겠는데 왜냐하면 그것의 통시적 추적을 통해 우리는 그로테스크에 대한 개념적 확장 그리고 새로운 미적태도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넘치는 상상력

물론 그로테스크란 20세기 유일의 현상은 아니며 현대문명 특유의 현상도 아니다. 그것은 (서구에서는) 최소한 저 멀리 로마문화의 초기 기독교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예술양식이며, 특히 이 시기에는 인간적 요소와 동식물의 요소들이 정교하게 결합되있는 형태가 대다수였다. 언어적으로 살펴 볼 때, 이탈리아어 ‘grottesco'를 어원으로 하는 프랑스어 ’grotesque'는 15세기 말 고대 로마의 폐허가 발굴되었을 때 지하에 파묻혔던 건축물 볼트를 가리키는 말이다. 특히 이 건축물은 동굴(grotta)과 흡사하였는데, 그 벽 모양은 덩굴식물인 아라베스크에 공상의 생물, 괴상한 인간의 상, 꽃 ·과일 ·촛대 등을 복잡하게 결합시킨 것으로, 그 괴이함이 사람들의 흥미를 끌며 그로테스키(grotteschi)라는 일종의 괴기 취미의 유행을 낳았다고 한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며 이 특별한 유적지는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 그 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동굴 벽에 서명 혹은 낙서를 하면서 건축물 볼트를 르네상스의 문화유산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그로테스크라는 취향은 역사적인 의미이외에도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인간의 본성, 욕망과 관련되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미술사적인 의미에서 그로테스크는 다소 경멸적인 의미를 동반한다. 이미 호라티우스(Horace)와 비트루비우스(Vitruvius)는 당대에 등장하는 과도한 상상력 -예를 들어 반인반수의 그림-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바 있다. 호라티우스는 이러한 상상력이야말로 자연적 질서를 거스르는 행위로, ‘sick man's dream'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기도 했다. 비트루비우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요즈음 우리나라 화가들은 친숙한 세계의 모습을 분명하게 재현하는 것 보다는 기괴한 모양들로 벽을 장식하고 있다. 둥근 기둥 대신에 괴상한 나뭇잎 모양과 둘둘 말린 머리 부분을 떠받친 세로줄이 간 나무줄기 모양들을 그리고 박공 대신 당초무늬를 그린다. -중략- 그 작은 줄기 모양의 기둥들은 사람이나 동물의 머리를 쓴 반인반수를 떠받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형상들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었고, 지금도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중략- 꽃의 줄기가 어떻게 지붕을 받치며, 촛대가 어떻게 박공 모양의 조각을 지탱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연약한 새싹이 인간의 형체를 싣고, 어떻게 뿌리와 덩굴손에서 꽃과 인간의 몸을 결합한 잡종 형태들이 자라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호라티우스와 비트루비우스의 이러한 미적 태도는 스토아학파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듯 당대 학자들의 완고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제3의 미감 소위 그로테스키한 취향은 널리 퍼져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 시각적 재현을 넘어서 일탈에 가까운 창조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미적 풍토는 새로운 미적양식으로 계승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중세라는 혹독한 시간을 거쳐 그로테스키한 취향은 르네상스를 통해 재발견 되기에 이른다. 그것의 대표적인 양식이 Mannerism이다.

2. 확장되는 의미

놀라운 것은 16세기 영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매너리즘을 통해 이 기괴한 취향을 미적양식으로 수용하고 있다면, 영국에서 ‘antic'이라는 이름으로 대유행 중이었다. 특히 16세기 당시 영국에서는 이 ‘앤틱’이라는 용어를 ‘망상의, 악마적인, 바보스러우며 우스꽝스러운’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는데, 이는 유럽사회가 그로테스크를 바라보는 시선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또 하나 지적할만한 사실은 조각 분야에서 그로테스크의 또 다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비트루비우스는 이 알 수없는 취향을 비난하며, 이것을 동양적인 것과 연결시키는 데 소위 그로테스크를 동양적인 것 혹은 타자적인 것으로 (물론 지극히 서양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첫 번째 지점이라 하겠다. (실제로 그로테스크 장식은 동양에 근접한 로마의 지역 Tralles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조각 장식에서 발견되는 이종교배의 이미지가 오로지 동양 문화권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서의 발견할 수 있는 수 많은 이종교배의 이야기들. 오비디우스의 <변신>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초자연적 변신의 모티브야 말로 가장 서양적인 이야기지 않는가.

이렇듯 오해와 낙인 속에서 그로테스크의 개념은 소위 타자적인 것, 초자연적인 이라는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데 이제부터 살펴볼 의미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전개된다. 그것은 바로 그로테스크의 의미를 비논리적이고 비균질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입장이다. 합리주의자들에게 있어 이성과 평정심은 조화로움과 질서를 보장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무질서한 자연을 조화롭게 만들고자 이성이 필요하며, 예술에겐 이러한 질서를 시각적으로 재현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반대에 서있는 무질서와 충동이다. 이것들은 세계를 예측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리며 마치 기상예보를 비웃는 폭우처럼 모든 질서를 망쳐놓는 파괴자이다. 따라서 이성은 비이성과 이성의 구도 속에서 세계와의 싸움을 벌이고자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바로 그로테스크가 취하는 입장인데. 그로테스크는 이러한 이분법 자체를 부정한다. 인간과 괴수를 섞어놓았던 회화적 상상력으로 사랑과 광기를, 행복과 우울을 뒤섞어놓는다. 실제로 예술영역에 있어서도 장르 간의 접합을 시도하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출현한 예술형식이 비희극(혹은 희비극 tragicomedy), 즉흥극이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로테스크엔 또 하나의 의미, ‘변덕스러움(Whimsicality)'이 추가된다. 이는 시적 즉흥과도 연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미술의 즉흥은 기술적이라는 차이를 갖는다. 따라서 그로테스크라는 의미에는 ‘기술(skill)’의 의미가 숨어있게 된다. 그런데 알다시피 기술적이라는 단어에는 ‘영리하다’. ‘재치있다’의 의미 외에도 ‘기만적’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 화가 제욱시스(Zeuxis)의 그림이 새를 떨어트릴 수 있을 만큼의 기술적 동시에 기만적이었던 것 처럼 말이다.

3. 역겨운 그러나 매혹적인…….

이전까지의 그로테스크가 개인의 상상력으로 비롯된 순수한 형태의 기술적 표현이었다면, 이제부터 살펴볼 그로테스크는 훨씬 더 심층적이고 어두운 영역을 탐구하고자 한다. 물론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었다. 비트루비우스가 자연스러운 것을 자연스럽지 않도록 접합하려는 작가의 작위성에 대해 알 수 없는 의도라고 공격한 것처럼 프로이드에게 있어 행위의 작위성, 즉흥적 결합이야말로 무의식의 층위를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나아가 유기체적 생명을 거스르는 이러한 분절적인 시도야 말로 죽음을 향한 이중적 욕망의 발현인 셈이었다. 따라서 프로이드에게 그로테스크란, 소위 ‘외설적이고 음란한 것’의 지향이며 은폐된 무질서의 공공연한 개시이다.

이미 플라톤은 <공화국 republic>에서 이러한 취향을 사형당한 사람의 시체를 보고 싶은 한 사나이의 욕망에 비교하고 있다. 또 그 광경을 보고 역겨운 동시에 스펙터클하다고 말하는 사내처럼 그로테스크는 양가적인 성격을 갖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의 기능을 설명하며 불쾌의 쾌를 내세운 바를 떠올리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가상과 실재에 대한 태도인데, 플라톤이 있는 그대로의 시체를 보고자하는 페티시즘적 열망을 말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오히려 가상의 재현-시-를 통한 불쾌의 쾌를 설명하고 있다. 즉, 실제 느끼는 불편한 감성들을 가상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시이자 예술의 기능이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로테스크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접목시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반인반수의 이미지는 말 그대로 가상적 재현이자 부정확한 모사이므로 예술적 쾌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이다.그리고 그것의 이름은 ‘진귀함(novelty)'이다.

4. 알 수 없는 목소리

로마의 정치가이자 학자, 키케로는 이러한 종류의 진귀함을 또 다른 말로 잠재력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호라티우스와 비트루비우스의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그로테스크의 매력을 잠재력, ‘눈길을 잡아끄는 힘’으로 표현했다. 신화적으로 말하자면 헤시오도스에 의해 이름 붙여진 9명의 뮤즈들이 전해주는 능력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목소리가 믿을만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아니 뮤즈가 공공연히 거짓말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가 영적인 허상, 소위 영감으로만 전달된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러한 관계는 시인과 대중과의 관계와도 닮아있는데, 왜냐면 시인이 전하려는 진실의 목소리는 결국 진실 그 자체라기 보다는 진실의 가상적 재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특히 번역의 딜레마로서 말이다.

이러한 영적인 모호함이 건축적으로 표현된 양식이 아라베스크(arabesque)이자 무어레스크(moresque)이다. 당시의 이슬람에서는 성상숭배 금지되었는데 따라서 신을 직접 묘사할 수 없는 이슬람의 예술가들은 신의 섭리를 식물의 줄기와 잎을 도안화해 전달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알 수 없는 당초(唐草) 무늬와 기하학적 무늬가 탄생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아라베스크였다. 특히 15세기 르네상스 시기의 유럽은 교역을 통해 이러한 이슬람의 양식 그리고 아프리카의 이색적인 문양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따라서 진귀함의 측면에서 이를 수용하고 자기화했다.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피라미드, 분묘와 같은 동양의 건축물에 경외의 감정이 포함된 질투였던 것이다.

5. 웃음과 조롱 사이

이미 비트루비우스가 당대의 등장한 새로운 기법을 두고 조롱했듯이, 그로테스크는 웃음-그러나 즐겁다기 보다는 조롱에 가까운-과 연관되어있다. (물론 이와는 관계없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웃음의 기능을 카타르시스 즉, 질서를 유지시키는 무질서의 분출로 설명했는데 이는 바흐친이 주장한 카니발적 그로테스크의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18세기 미학자 클레이버러 또한 그의 책 <영문학에서의 그로테스크. 1965>에서 이러한 추이를 지적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로테스크라는 말은 이성의 시대-그리고 신고전주의의 시대-에 좀 더 광범위한 뜻으로 쓰이게 된다. 이 시기에는 무절제, 환상, 개인적 취향, ‘유기체의 자연스러운 상태’의 거부 따위와 같은 그로테스크 형식의 특징들이 조롱과 배격의 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18세기 초엽에 이르러 이 말에 담기게 된 보다 일반적인 의미는 형용사로 ‘우스꽝스러운’, ‘뒤퉁그러진’, ‘부자연스러운’ 명사로는 ‘부조리’, ‘자연의 왜곡’ 등이있다.

그런데 그로테스크를 문학사 차원에서 논의하는 필립 톰슨은 이러한 웃음이 단순한 해학과 풍자로만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그로테스크를 희극적인 것과 끔찍스러운 것으로 나누기 보다는 그로테스크가 주는 효과의 측면에 주목해, 해소되지 않는 갈등과 결말이 전하는 웃음과 공포야 말로 진짜 그로테스크라고 주장한다.

6. 과학의 이름아래

호라티우스와 비트루비우스의 예술관이 자연 질서의 모사라면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미켈란젤로는 이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했다. 자연 질서 자체가 ‘참’이라는 보장이 그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미켈란젤로에게 있어 화가의 임무란 자연의 모사가 아니라 장소와 상황에 따라 상상력을 발휘하고 인간의 감정에 따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하는 행위였다. 실제로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이자 건축가 조르지오 바사리는 反 비트루비우스, 反 부르넬스키적인 미켈란젤로의 피렌체 건축을 두고 'alla grottesca'라고 불렀는데 이는 도나텔로가 만든 성막에 대해서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러한 시도를 가능케 했던 것은 미켈란젤로를 후원했던 교황 네오 10세와 추기경 질리오 메디치 덕분이었는데 다른 것과 차별화된 진귀함이야 말로 자신들의 가치와 권위를 잘 드러내는 수단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장신구, 소지품, 건축양식에는 反 비트루비우스적인 동시에 그로테스크한 반인반수, 괴물들의 이미지가 다채롭게 출현했다. 물론 조르지오 바사리는 이러한 미켈란젤로의 창의성에 대해 다소간의 불안을 느꼈는데 왜냐면 미켈란젤로의 파격적인 시도가 바사리에겐 전통의 해체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는 미켈란젤로이 건축양식을 두고 ‘독일에 비해 떨어진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가 말한 독일의 건축적 양식은 다른 아닌 고딕이었다. (가장 그로테스크한 미감을 살린 건축양식 고딕말이다!)

사실 르네상스에 가장 꽃을 피운 학문이라면 과학일 것이다. 따라서 예술 또한 과학주의의 영향을 받게 되는데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인간중심의 미술을 원근법이나 해부학을 이용해 재현하였고 또 이를 통해 풍경화와 초상화를 제작하였다. 특히 자연의 형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경향이 생겨나며 작품들은 보다 정확한 시각적 영상물로 발전하게 되었다. 정량화를 강조하는 당시 분위기 속에서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광학과 기하학에 집착을 보였으며, 단테는 <향연>에서 ‘기하학은 오류로 얼룩지지않은 가장 순수하고 그 자체로 혹은 원근법의 도움을 받더라도 가장 자명한 학문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원근법을 회화론으로 가져온 알베르티의 또한 구체적으로 인간과 자연의 이상적인 비례를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문제는 주류의 움직임과는 달리 거기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계속해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아나모포시스라고 불리는 원근법의 왜곡인데. 한스 홀바인의 작품 <대사들>이 대표적이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아나모포시스를 실험했다.

특히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왜냐면 그는 아나모포시스의 실험처럼 예술가는 단지 재현의 도구가 되어선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그에게있어 예술가란 창조자이다. 따라서 다빈치는 극단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시각적 재현을 최고의 가치로 꼽기도 했다. 이러한 주장은 분명 그로테스크의 미의식을 반영한 결과이자 그로테스크의 제3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전까지의 그로테스크가 자연 질서의 재조합이라는 전제에서 논의되어 왔다면 이제 그로테스크는 당당한 세계의 창조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Pictorial Imagination'으로서 말이다.

7. 창조적 성찰

마지막으로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를 빌려와 보자.(다소 뜬금없지만...) 방법론적 회의에 따르면 상상이란 단순히 내면의 외면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상은 실제의 경험으로부터 유추되는 세계이다. 따라서 모순적이게도 상상은 감각적이고 육체적이며 물질적이다.

그런데 그는 말한다. “지금 내가 잠옷을 입고 화롯가에 앉아 있는 것을 회의할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물론 알고 있다시피 대답은 ‘yes'이다. 논리는 다음과 같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한다. 심지어 화롯가 옆에서 잠을 자고 있는 자신마저 의심한다. 발가벗고 잠을 자면서 지금 여기에 앉아있는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말로서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정신병자의 환상처럼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회의 함에도 단 하나 회의할 수 없는 것은 “내가 모든 것에 대해 회의할 때조차 내가 회의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회의할 수 없음”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사실이다.

이 끝없는 회의의 의미는 감각적 세계와 경험으로부터 유추된 합리적 세계 사이의 장벽을 허문다는 데 있다. 회의라는 극한의 사유방식을 통해 합리적 사고의 우월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화롯가에 앉아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었던 것처럼 감각과 실재는 구분될 수 없이 모호하다. 극단적으로 말해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소멸한 셈이다. 이를 회화적으로 이해해보면 자연질서를 전제로 한 현실과 회화 간의 경계가 사라짐 꼴이다. 왜냐하면 현실이 꿈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 이성적 사고가 어차피 방법적 회의에 의해 부정되는 것이라면 회화적 재현은 논리적 인과율에 비해 떨어진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데카르트는 두 개의 이분법적 경계를 소멸시키는 것으로만 방법적 회의의 의의를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방법적 회의는 감각과 이성을 ‘성찰’이라는 초감각적 초이성적 행위로 이끈다. 즉, ‘jumble together’의 사유로서.

결론적으로 데카르트의 회의란 경험으로부터 추출되는 사유이지만 그 믿을 수 없는 사유를 넘어서기 위해 성찰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성찰은 곧 상상이고 창안이다. 발견되는 것이 아닌 발명되는 것으로서.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호라티우스와 비트루비우스가 비난한 상상은 다름 아닌 방법적 회의이자 성찰이라고. 다소 궤변처럼 들리는 이러한 논리는 예술가의 위치에 관한 중요한 문제제기가 된다. 예술가들은 신처럼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창조가 어떤 식으로 정당화 될 수 있는가하는 엄청난 문제를 동반한 질문으로 말이다.


<Variation>에 관한 작업 노트

V.A.R.I.A.T.I.O.N
2009
5min. Found Footage Cinema

작품의 개요 :

기존 필름에서 찾아낸 이미지들을 기반으로 하는 found footage film 형식의 이 작업은 호러 영화에서 흔히 다뤄지는 폭력의 이미지들을 재조합하고 각각의 장면들을 해체하는 목적에서 기획되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파운드 푸티지 형식이란 원래의 필름에서 특정한 부분만을 가져와 필름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의미를 해체하는 작업을 말한다. 니콜 브레네즈에 따르면 파운드 푸티지의 미학적 효과란 회고, 전유/전용, 변주/소모를 통해서 이뤄지는데 특히 이 가운데 본 작업은 전유와 전용이라는 파운드 푸티지의 형식을 빌려 호러 영화의 장르적 컨벤션을 탐구하고자 한다.

작품의 내용 :

본 작업은 우리를 공포에 떨게하는 호러의 재현방식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이 실체적인 공포이던 심리적인 두려움이던 간에 영화는 그것을 분명하게 기술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매우 시각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물론 벤야민은 영화가 시각적인 이미지를 넘어선 촉각의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지만, 여기서 말하는 시각적이라 함은 매우 협의의 개념으로 사용코자 한다.)

따라서 전통적 호러 영화에서 추출한 공포의 이미지들을 재구성하고 기존의 서사가 아닌 다른 문맥 위에 위치시켰다. 또 작업의 제목인 변주 (Variation)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지들을 변주하고 새로운 리듬을 부여했다. 이러한 작업은 크게 두가지의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먼저 호러 이미지의 리드미컬한 이미지의 재구성을 통해 이미지에 부여된 아우라를 파괴하고자 하는 기획이다. 관객들이 느끼는 공포의 체험이 결국 스크린 현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회의적 진실일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조합된 공포의 이미지에서 느끼게되는 공포의 순간은 스크린 현실이 관객들에게 얼마나 실체적 공포로 다가설 수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소위 장르 컨벤션에 관한 연구인데, 호러 영화는 그 어떤 장르에 비해서도 확고한 서사문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따라서 전형화라고 부를 수 있는 장르 컨벤션을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 또 다른 목표였다. 호러영화에서 반복되는 이미지들은 기승전결의 구조로 나누어 편집하였으며 따라서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관습적인 이야기의 양식을 따랐다.

그러나 변주의 세 번때 파트에서는 데이빗 린치의 비서사적이고 비관습적인 영화들을 다룸으로서 앞 선 호러 영화들과는 또 다른 방식의 호러영화를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물론 데이빗 린치에 대한 오마쥬와 함께)


Footage Films :

<Suspiria>. Dario Argento. 1977
<Shining>. Stanley Kubrick. 1980
<Evil Dead>. Sam Raimi. 1982
<Lost Highway>. David Lynch. 1997
<The Blair Witch Project>. Eduardo Sanchez & Daniel Myrick. 1999
<Haute Tension>. Alexandre Aja. 2003
<Hostel>. Eli Roth. 2005
<Porn of the dead>. Rob Rotten. 2006
<Hostel 2>. Eli Roth. 2007
<Laid to rest>. Robert Hall. 2009

(제작년도에 따른 목차)


시간은 두 배로 흐르지요...

제목이 sad potato라네요...


요즘은 시간은 거꾸로 흐르기는 커녕 시간은 두배로 흐릅니다.
그러니 다른 게 슬픈 게 아닌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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