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와 SK 커뮤니케이션즈가 한 식구가 됩니다 라는 소식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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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주 소박한 깨달음을 얻은 적이있다.
그것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상상력을 갖지 못한다면 절대로 자본의 힘을 견뎌낼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였다. 좀 거창한 이야기였지만 이글루가 대자본의 손으로 넘어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난 또 다시 그 무력감에 대해 떠올릴 뿐이었다.
물론 사실을 고백하자면, 난 이글루의 오래된 블로거도 아니오, 1인 미디어 시대를 지향하는 성실한 고급 글쟁이도 아니다. 더욱이 싸이월드에 대한 혐오가 깊은 편도 아닌지라 이글루스의 인수 합병 사실에 이와 같은 피로감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울수 없는 이 무력감은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굳이 남들이 다 아는 이야기를 해본다.
본래 싸이는 이미지 위주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자신을 드러내는 '셀카' 열풍의 진원지가 되었고 '얼짱 포즈'의 종착지이다. 전국민이 디지털 카메라를 손에 쥔채 일상의 아름다움을 찾고자 경주했으며, 찰나적인 이미지들이 자기 삶의 전부라고 믿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미지가 만들어낸 세계는 원래 단단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미지의 세계가 텍스트와 맥락의 풍부함으로부터 보장받는 곳이라면 싸이월드는 태생적으로 견고한하지 않다. 왜냐면 싸이월드의 세계 속에 텍스트가 자리할 공간은 그 자체로 숨이 막혀 터져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퍼.가.요'라는 말 한마디는 그 세계에 대한 상징이다. 텍스트로 부터 떨어져 어디론가 업혀간 이미지는 끝없이 유랑하고 부유한다. 본래의 출처와 담론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새로운 해석들에 의해 위장되고 포장될 뿐이다. 새로운 해석이 두려운 것은 아니다. 이미지가 두려운 것은 제 자신이 존재의 근거가 되어 아름다우냐 혹은 퍼갈만 하냐의 물음 아래 놓여 심판을 기다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주제는 사라지고 대상만이 남는 것이다.
이글루스 합병 소식 아래 이렇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단지 방명록에서 '급전대출'을 종용하는 글을 지워야만 하고 '10Kg 체중감량'의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이들과의 씨름이 귀찮아서 만은 아닐 것이다. 대다수의 이글루 회원들이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 자본의 힘이 보여주는 찰나적인 감수성의 세계이자 근거없는 자유의 세계가 만들어내는 조악한 이미지의 환영들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또 다시 자본의 환영 아래 놓여있게 되었다.
그리고 씁쓸한 마음을 감출 길 없어 언젠가 읽었던 폴 비릴리오의 이야기 한 편을 남길 뿐이다.
1968년 5월 15일 파리, 5일 전의 '바리케이트의 밤' 때 경찰이 감행한 폭력적 진압에 항의하기 위해 국립미술학교, 뤽상부르 공원, 퐁네프 다리를지나 2만 5천 여 명의 학생, 예술가, 지시인이 오데옹 국립극장을 점거하려 모여들고 있었다. 같은 시각, 소르본 대학에서는 일군의 학생들이 라슐리외 강당을 가득 매운 채 사전 집회를 열고 있었다. 강단에는 머리가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했지만, 적당히 햇빛에 그을린 피부와 단단한 체구를 지닌 중년 남자가 연설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공산주의자로 보이는 어느 학생이 연사에게 느닷없이 질문을 던졌다.
"소르본 대학의 담벼락에 씌어있는 낙서를 보셨습니까?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게로'라니! 말도 안되지 않습니까?
권력은 상상력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에게 가야죠."
"그렇군요, 동지.
그런데 동지는 노동자 게급에게도 상상력이 있다는 걸 부정하는 겁니까?"
..... 폴 비릴리오의 '속도와 정치' 中. p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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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주 소박한 깨달음을 얻은 적이있다.
그것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상상력을 갖지 못한다면 절대로 자본의 힘을 견뎌낼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였다. 좀 거창한 이야기였지만 이글루가 대자본의 손으로 넘어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난 또 다시 그 무력감에 대해 떠올릴 뿐이었다.
물론 사실을 고백하자면, 난 이글루의 오래된 블로거도 아니오, 1인 미디어 시대를 지향하는 성실한 고급 글쟁이도 아니다. 더욱이 싸이월드에 대한 혐오가 깊은 편도 아닌지라 이글루스의 인수 합병 사실에 이와 같은 피로감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울수 없는 이 무력감은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굳이 남들이 다 아는 이야기를 해본다.
본래 싸이는 이미지 위주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자신을 드러내는 '셀카' 열풍의 진원지가 되었고 '얼짱 포즈'의 종착지이다. 전국민이 디지털 카메라를 손에 쥔채 일상의 아름다움을 찾고자 경주했으며, 찰나적인 이미지들이 자기 삶의 전부라고 믿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미지가 만들어낸 세계는 원래 단단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미지의 세계가 텍스트와 맥락의 풍부함으로부터 보장받는 곳이라면 싸이월드는 태생적으로 견고한하지 않다. 왜냐면 싸이월드의 세계 속에 텍스트가 자리할 공간은 그 자체로 숨이 막혀 터져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퍼.가.요'라는 말 한마디는 그 세계에 대한 상징이다. 텍스트로 부터 떨어져 어디론가 업혀간 이미지는 끝없이 유랑하고 부유한다. 본래의 출처와 담론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새로운 해석들에 의해 위장되고 포장될 뿐이다. 새로운 해석이 두려운 것은 아니다. 이미지가 두려운 것은 제 자신이 존재의 근거가 되어 아름다우냐 혹은 퍼갈만 하냐의 물음 아래 놓여 심판을 기다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주제는 사라지고 대상만이 남는 것이다.
이글루스 합병 소식 아래 이렇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단지 방명록에서 '급전대출'을 종용하는 글을 지워야만 하고 '10Kg 체중감량'의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이들과의 씨름이 귀찮아서 만은 아닐 것이다. 대다수의 이글루 회원들이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 자본의 힘이 보여주는 찰나적인 감수성의 세계이자 근거없는 자유의 세계가 만들어내는 조악한 이미지의 환영들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또 다시 자본의 환영 아래 놓여있게 되었다.
그리고 씁쓸한 마음을 감출 길 없어 언젠가 읽었던 폴 비릴리오의 이야기 한 편을 남길 뿐이다.
1968년 5월 15일 파리, 5일 전의 '바리케이트의 밤' 때 경찰이 감행한 폭력적 진압에 항의하기 위해 국립미술학교, 뤽상부르 공원, 퐁네프 다리를지나 2만 5천 여 명의 학생, 예술가, 지시인이 오데옹 국립극장을 점거하려 모여들고 있었다. 같은 시각, 소르본 대학에서는 일군의 학생들이 라슐리외 강당을 가득 매운 채 사전 집회를 열고 있었다. 강단에는 머리가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했지만, 적당히 햇빛에 그을린 피부와 단단한 체구를 지닌 중년 남자가 연설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공산주의자로 보이는 어느 학생이 연사에게 느닷없이 질문을 던졌다.
"소르본 대학의 담벼락에 씌어있는 낙서를 보셨습니까?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게로'라니! 말도 안되지 않습니까?
권력은 상상력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에게 가야죠."
"그렇군요, 동지.
그런데 동지는 노동자 게급에게도 상상력이 있다는 걸 부정하는 겁니까?"
..... 폴 비릴리오의 '속도와 정치' 中. pp.269









덧글
Nagy 2006/03/08 05:03 # 답글
뉴스카테고리의 글들을 보다가 찾아왔습니다. 때로는 막연하게 느꼈던 거부감들을 잘 정리해주셨군요. ... 온라인에서도 기업의 그림자를 잊고 살아가는건 불가능한가봅니다. 무척 씁쓸하네요.
blackmoon 2006/03/09 13:39 # 답글
To.nagy님반갑습니다.
마치 정말 좋아하던 카페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스타벅스나 다른 큰 카페들이 들어서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어서 생각해본대로 몇 자 써보았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