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on mueck, The Boy, 1999
'예술적 상상력은 크면 클수록 좋다.'라고 생각한다. 사실 '예술적 상상력'이라고 어렵게 표현했지만 쉽게 말하자면 '뻥이 세면 셀수록 좋다'는 말이다. 어줍지 않은 레퍼런스를 제시하기보다는 차라리 좌중을 압도시키는 메타포가 더 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론 뮤엑(Ron Mueck)의 작품 <The Boy>나, 이번 광주 비엔날레에 볼 수 있었던 송동(Song Dong)의 작업 <버릴 것 없는>이 흥미롭다. 물론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로는 작품이 지닌 스케일 때문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센트럴 파크를 천으로 뒤덮는 용기를 보여준 크로스토 부부의 대지미술이라던가 전수천 스타일의 스케일 큰 행위예술에는 큰 감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보아 스케일만으론 내 기호와 취향을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일단은 나의 미적태도를 설명하는데에는 '예술적 상상력'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다.
미술을 벗어나도 기준은 동일하다. 소설로만 보아도 에코의 '바우 돌리노'나 더글라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풍의 소설이 좋다. 물론 어느 젊은 날엔 스타인 벡이라던가 업다이크의 소설을 많이 읽었다.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아직도 손에 꼽는 작품이다. 하지만 세상살이에 지쳐버린건지 아니면 세상과 맞서기가 두려운 건지 이제는 요상하게도 세상으로부터 2만 광년즈음은 더 멀리 나아간 작품들을 선호하게 되어버렸다. 2만 광년이라해서 세상을 등진 강호의 허풍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2만 광년 즈음 떨어져보니 세상이 더 잘보이더란 말이다. 박민규의 소설이 좋은 것도 마찬가지 연유에서이다. 사춘기 소녀적 감성이 군데군데 드러나 좀 쑥스러운 대목이 있긴 해도, 그 예술적 과장 속에서 나는 세상의 쓸쓸함을 마주한다. 그것은 리얼리티 넘치는 세상의 이야기 속에선 찾아 낼 수 없는 또 다른 세상의 진실이다.
2주전 즈음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를 읽었다. 다카하시 겐이치로라는 일본 작가의 작품이다. 이미 한 차례 국내에 소개되었다가 절판되었던 작품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네이버 지식인같은 곳엔 그의 책을 구하는 안타까운 호소들을 이곳저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문득 든 생각인데, 그렇게 남들이 이 책을 애타게 찾고 있을 때, 두다리 쭉 뻗고 잠이나 자고 있을 내가 떠올라 돌연 부끄러워진다.
아무튼 운좋게도 이 책은 재간행되었고 두 다리 쭉뻗고 잠이나 자던 내 손에도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책 제목과는 다르게 이 책은 우아하지도 않고 감상적이지도 않으며 더욱이 일본야구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물론 일본 야구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등장하는 모두는 일본야구를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일본야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야구와는 다르다.
예를 들어, 일본야구를 배우기 위해 한 소년이 해야만 하는 훈련은 다음과 같다.
힘든 나날이 계속되었다.
어느날은 두 시간 이내에 900개의 야구 시를 만드는 고행.
712. 제목, 피칭머신
피칭머신이여
피칭머신이여
너는 우리 어떤 투수보다도 컨트롤이 좋구나
그러니까 오늘부터는 선수로서 등록해줄께.
713. 제목, 중견수
나는 39년이나 센터를 지키고
대략 1만 3천개의 센터플라이를 잡아왔어
생각해보니
플라이를 잡을 때 이외엔 하늘을 본 적이 없구나.
-중략-
또 어떤 날은 리모컨을 움켜잡고 매일 100편 이상의 포르노 비디오를 감상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트레이닝을 받았다.
"큰아버지, 나 이제 싫증이 났어요."
" 이정도로 우는 소리를 하다니 한심하군. 이봐, 딴청 피우지 마. 그런 대화 장면은 빨리 보내고 얼른 다음 야한 장면으로 가거라."
"그렇지만 모든 비디오가 나중에는 얼굴에 사정하곤 끝이잖아. 어른들은 재미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털도 안났어. 기분이 나빠져."
"소년이여, 잘 듣거라. 포르노는 어린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죽도록 따분한 것이야. 그렇지만 이 정도의 따분함에 지긋지긋해할 정도면 도저히 훌륭한 야구선수는 될 수가 없어. 야구 역사에 빛날 정도의 명선수들은 대게 '천 번 노크'라고 해서 하루에 천 번이나 포르노를 보는 훈련에 힘썼어."
마침내 나도 큰아버지와 같은 야구광이 되었다. 두사람의 열정은 식을 줄 모르고 뜨거워져만 간다.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中 '센티멘털 베이스볼 저니' 중에서...
이와 같은 선문답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또 다시 일본야구로 부터 한 4억 광년 정도는 멀리 떨어져나온다. 그러나 앞서의 이야기처럼 4억 광년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4m의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또 다른 진실을 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즈음 이 책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가 '문학'과 '삶'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가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그런 점에서 몇 년 연속 4할, 5할이 넘던 타자가 슬럼프에 빠져버린 채 털어놓는 고민 : '더이상 쳐야할 공이 없어 칠 수 없다'는 그의 고민은 야구를 넘어서는 아주 우아하고 감상적인 삶의 메타포가 되는 것이다.

![[수입] Michigan](http://image.aladdin.co.kr/coveretc/music/coveroff/2732436329_1.jpg)

![[수입] Misery Is A Butterfly](http://image.aladdin.co.kr/coveretc/music/coveroff/2882436521_1.jpg)





덧글
jeannie 2006/11/01 21:51 # 삭제 답글
아하! 드디어 올라왔네요.마치 기다리던 답장을 받은 기분인걸요? ㅎㅎ
blackmoon 2006/11/03 13:20 # 답글
To. jeannie오홋...오랫만에 편지쓴것 같은 기분이네요...
좀 읽어봤어요?
캐독고랭보 2009/07/18 19:24 # 삭제 답글
저도 최근에 봉타나 때문에 탄력좀 받아 적극적으로 즐기고자 책좀 읽었드랬죠."야구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아무리 우수한 선수나 감독일지라도 완성을 향해 정진하는 예술가처럼 보인다."-레너드 코페트
진짜 야구는 예술이지말입니다.
blackmoon 2009/07/25 15:55 # 답글
To. 캐독고랭보예전에 네팔을 여행하면서 만난 일본인 친구에게 오히려 다카하시 겐이치로를 소개해줬던 기억이 있습니다. 야구를 말하지 않으면서 야구에 대한 매력을 가장 잘 말해주는 묘한 소설이었습니다. 읽은지 좀 돼서 디테일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말이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