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dilon Redon
Parsifal, 1912, Pastel on beige paper, Musee d'Orsay, Paris
'사양'은 지는 태양을 가리키는 말로서 일본 패망직후 귀족출신의 아가씨 가즈코가 겪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입니다. 아름답지만 서서히 허물어져가는 어머니, 귀족이라는 신분이 오히려 삶의 무거운 짐이 되어 스스로를 파멸해가는 동생 나오지 그리고 나오지의 사상적 동지이자 스승인 우에하라. 이 셋을 통해 가즈코는 삶의 희망과 좌절을 봅니다. 하지만 삶이란 것이 만만치가 않듯이 귀족 출신의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무기력한 근심과 최소한의 노동뿐입니다.
하지만 다자이 오사무는 이러한 일상 속의 그녀에게 전복의 힘을 부여합니다. 그것은 관습이라는 모랄의 거부이자 가치관의 전복인 것입니다. 그녀는 아주 태연스럽게 누군가의 아이를 낳기를 희망합니다. 그것은 그 누구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단지의 그녀의 삶을 위한 결정일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의 책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녀는 그들보다 훨씬 더 혁명적이고 가치 전복적인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경향은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데카당스한 삶과 맞닿아 있습니다. 젊은 시절 그를 열광케했던 사회주의 사상이 결국은 하나의 교조적 맹신에 불과했음을 깨달은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혁명은 모럴의 해체이자 자기 부정의 미학이었고 이는 고스란히 작품 세계 속에 녹아든 것입니다. 따라서 많은 다자이 오사무 작품들은 자기고백적인 서술을 사용하고 작가 자신을 암시하는 인물을 등장시키게 됩니다. 이러한 면은 작품 '인간실격'에서 극대화된다 할 수 있습니다. 부유층의 자제로 태어나 오히려 혁명의 적이 될 수 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 그리고 일본 패망이라는 경제적, 심리적 공황상태에 놓인 청춘의 불안감. 이 모든 것들은 자기부정과 자기파괴라는 방식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작품 속의 인물들 역시 모럴의 해체와 자기 生의 부정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취하게 됩니다. '인간실격'의 경우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주인공 '요조'는 자기 파멸의 선택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작가 자신의 id로서만 바라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자기파괴와 자기학대는 인간의 보편적 기질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에의 동경, 파괴를 통한 카타르시스, 자기부정의 미학 이 모든 것들은 아주 건전하다고 믿어지는 삶 속에 숨어든 또 하나의 나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근대의 자연주의 소설들이 결국은 파괴와 퇴폐 그리고 악행으로 귀결 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날이 차가워져서 그런지 마음도 차가워지는 듯 합니다. 아니 고백하건데 며칠 전에는 개그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마음이 울렁거려서 일찍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을 청했습니다. 이 어찌할바없는 마음을 가지고 오늘부턴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한 권 더 읽어볼 생각입니다. 아니면 오사무만큼이나 극단적였던 미시마 유키오의 책이라도 말입니다. 날이 차네요...

![[수입] Michigan](http://image.aladdin.co.kr/coveretc/music/coveroff/2732436329_1.jpg)

![[수입] Misery Is A Butterfly](http://image.aladdin.co.kr/coveretc/music/coveroff/2882436521_1.jpg)





덧글
urbino 2006/11/29 12:33 # 답글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 이 몇 주전에 읽은 11세기 헤이안 궁정여인이 쓴 Gossamer Years 랑 어쩐지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말로, 거미줄 같이 나날? 이라고 번역해야 되나? 이 책이 우리말로 번역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찌할 바 없는 마음이 어떤지 나도 안다. 물론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나야, 그 지긋지긋한 사랑의 문제로 어찌할 바 없는 마음이 있었지만.. 날이 차다는 말도 이해하겠구.. 아이... 시간이 해결하지 않겠니 ?
blackmoon 2006/11/29 12:37 # 답글
To. urbino문득 내가 방기한 일들이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그러니 걱정말게나. 어차피 부메랑이라면 그것도 내가 던진거 아니겠나 싶으니 말이야...
bonori 2006/11/29 22:25 # 삭제 답글
어찌 생각해보면 나의 번잡하고 어지러웠던 고딩시절은그때 한창 많이 읽었던 류(지금 나는 류는 쓰레기야!라고 말하는 사람중에 하나지만;)보다는 사람을 먹먹함의 극한으로 떨어뜨리는
다자이 오자무로 얼룩져있었던것같아.(절대 멋있거나 그럴싸한게 아니야.
난 그때 정말이지 아무것도 않하고 책만 읽고 밥만 먹었더랬으니까)
조금은 녹아버리고 닳긴했지만 그때보다는 따뜻한 머리로 다시 읽어보고 싶으다.으응.그래.네 글을 보니까-
blackmoon 2006/11/29 22:46 # 답글
To. bonori집에 돌아와보니 네가 글을 남겼구나.
또 새로운 느낌이다. 더욱이 이 무의미한 글을 보고 다시 한 번 읽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하니 마음이 좋다.
그래 요샌 마음도 날씨따라 착해지나보다. 아니 좀 맹숭거리기만 해서 재미가 없지만 어쩌랴. 날이 이런데...아니 날이 이런데라고 핑계하고 싶은데....
cilviaa 2006/11/30 17:24 # 삭제 답글
사양 인간실격 다 읽고 맥이 빠져서 한참을 어술렁 거렸는데인간은 참으로 무엇이라 규정 짓기는 너무 어렵구나 .
나도 젊은 한때 .....
blackmoon 2006/12/01 09:08 # 답글
To. cilviaa하하하
'젊은 한때....'!!!
요새 우울증에 빠지셨다고 아침에 고백하시던데 다리좀 나아지면
여행이라도 갈깝쇼?
캐독고랭보 2009/07/18 19:18 # 삭제 답글
한없이 가늘지만 공격적인 우아함,극렬한 허무,
턱없는 오만함,
전 다자이 오사무 미치도록 사모합니다.
인간실격,나의 소소한 일상,사양 까지 읽었고 앞으로 다 독파할 계획입죠
blackmoon 2009/07/25 15:56 # 답글
To. 캐독고랭보님저도 다자이 오사무의 열렬한 팬이라지요.
반갑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