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03. 03
Tibet에서 Shanghai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Contax G1 / Velvia 100
몇 일 전 충무로에 다녀왔다.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몇 가지 재료를 사기 위해서였다. 인화지, 인화액, 정착액을 살 생각에 동네문구점을 지척에 둔 어린아이처럼 기분이 설레였다. 가장 먼저 <세기상사>를 들렸다. 수리 중이었다. 인부들이 목재를 나르고 간판을 바꿔 달았다. 하긴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필름시대가 저 만치 가고 있음을 알아채지는 못했다. 이번엔 포토피아. 허옇게 먼지를 뒤집어 쓴 단 하나의 인화지 재고 앞에서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서둘러 종로 청운사로 향했다. 이미 종로대로변에서 옥탑방으로 밀려난 청운사였다.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옥탑방에서 마주친 것은 필름과 약품 대신 빼곡히 자리잡은 카메라뿐이었다. 마음 한 구석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혼수상태에서 막 깨어난 환자처럼 내가 모르는 세상이 내 앞에 서있었다. 삼성사로 향했다. 삼성사 역시 종로의 뒷 골목으로 숨어들은 건 이미 오래 전 이야기. 물어물어 삼성사를 찾았다. 주인 아저씨, 가게풍경은 그대로였지만 쇠락의 분위기를 직감할 수 있었다. 아저씨 역시 이것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알고 있었다. '이제 서울 시내에서 필름과 약품을 직접 살 수 있는 곳은 몇 군데 뿐이라고.우리도 이 장사를 계속해야 하는 건지 의심하고 있다네...' 마음이 스산해졌다.
동아리 후배에게 전화해 (나를 뺀) 세상 모두가 아는 이 변화에 대해 물었다. 어떻게 필름과 인화지를 사서 쓰고 있는지. 약품 폐기물을 처리해주는 곳은 있는지 말이다. 후배 왈 '필름 카메라가 그 자체만으로 클래식 카메라의 반열에 오른 건 이미 오래 전 이야기'란다. 좀 과장되게 말해. 필름 카메라를 계속 고집하는 건 돈지X 이란다. 세상에....난 그동안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문득 나 스스로가 바보스럽게 여겨졌다.
그렇다. 어쩌면 돈지X이 맞겠다. 격하게 표현 하자면 촬영과 인화가 편리한 디지털을 놔두고 굳이 아날로그를 선택할 이유는 없다. 솔직히 고백컨데 필름과 디카의 오묘한 색감 차는 그저 느낌으로 알 뿐이니 말이다. RGB값이 어떻다거나 CMYK값 같은 걸 들어 디지털보다 필름이 더 우수하다고 주장할 지식도 없다. 부끄럽지만 안드로메다 만큼이나 먼 나라 이야기이다. 그러니 필름 이미지를 고수해야 하는 이유도 필름 시대의 종언을 슬퍼해야 할 이유도 딱히 없다. 오히려 손쉽고 편리한 그리고 많은 면에서 월등한 디지털의 도래를 쌍수들어 환영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럼에도 반동분자는 여전히 서글프다. 옛 추억의 향수 때문이 아니다. 복고에 대한 동경 때문도 아니다. 단지 이것은 진지함의 시대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데에 느끼는 두려움이다. 가장 빛나는 순간을 기다리고, 얼마 남지 않은 필름의 수을 머리 속으로 헤아리며... 결국 가장 결정적인 모멘트를 기대하는 인간에 대한 오마쥬가 섞여 있는 두려움이다. 좀 거창하게 들리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실제로 필름 카메라는 그렇다. 촬영자는 자신이 찍은 사진 이미지를 어림직잠하고 결과물을 기다리며 반성한다. 좀 더 다가갔어야 하는 건 아닌지. 빛이 강했던 것은 아닌지. 상대방이 자연스러워 했는지... 모든 것은 반성과 회의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반복과 시행착오를 통해 비로소 상상 이미지와 현실 이미지는 가까워 진다. 현상과 인화의 순간도 마찬가지다. 붉은 암등 아래 인간은 고요해지고 숨죽여 이미지의 탄생을 지켜본다. 적막 속에서 가장 외롭고 겸손한 인간이 되어 서서히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을 곱씹어 볼 뿐이다. 그렇게 카메라를 손에 쥔 자는 성숙해간다.
하지만 아쉽게도 필름 카메라가 인간을 성숙시켜준다는 논리는 99.9999% 가설일 뿐이다. 아니 거짓이겠다. 그러니 디지털카메라가 인간을 경박하게 만들고 있다는 논리도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단지 나는 필름 카메라를 사랑한 나머지 그를 위한 마지막 변론을 전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대세를 거스르는 변명처럼 말이다.
그러나 누가모래도 나는 그 나머지 0.0001%의 가능성을 믿고싶다. 0.000001%이라도 나는 그 세계가 전하려 했던 것은 분명 이 시대와는 다른 무언가라고 믿고 싶은게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이 변명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 진지함이 사라져가는 시대를 바라볼 용기가 나질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