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bet에서 Shanghai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Contax G1 / Velvia 100
몇 일 전 충무로에 다녀왔다.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몇 가지 재료를 사기 위해서였다. 인화지, 인화액, 정착액을 살 생각에 동네문구점을 지척에 둔 어린아이처럼 기분이 설레였다. 가장 먼저 <세기상사>를 들렸다. 수리 중이었다. 인부들이 목재를 나르고 간판을 바꿔 달았다. 하긴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필름시대가 저 만치 가고 있음을 알아채지는 못했다. 이번엔 포토피아. 허옇게 먼지를 뒤집어 쓴 단 하나의 인화지 재고 앞에서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서둘러 종로 청운사로 향했다. 이미 종로대로변에서 옥탑방으로 밀려난 청운사였다.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옥탑방에서 마주친 것은 필름과 약품 대신 빼곡히 자리잡은 카메라뿐이었다. 마음 한 구석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혼수상태에서 막 깨어난 환자처럼 내가 모르는 세상이 내 앞에 서있었다. 삼성사로 향했다. 삼성사 역시 종로의 뒷 골목으로 숨어들은 건 이미 오래 전 이야기. 물어물어 삼성사를 찾았다. 주인 아저씨, 가게풍경은 그대로였지만 쇠락의 분위기를 직감할 수 있었다. 아저씨 역시 이것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알고 있었다. '이제 서울 시내에서 필름과 약품을 직접 살 수 있는 곳은 몇 군데 뿐이라고.우리도 이 장사를 계속해야 하는 건지 의심하고 있다네...' 마음이 스산해졌다.
동아리 후배에게 전화해 (나를 뺀) 세상 모두가 아는 이 변화에 대해 물었다. 어떻게 필름과 인화지를 사서 쓰고 있는지. 약품 폐기물을 처리해주는 곳은 있는지 말이다. 후배 왈 '필름 카메라가 그 자체만으로 클래식 카메라의 반열에 오른 건 이미 오래 전 이야기'란다. 좀 과장되게 말해. 필름 카메라를 계속 고집하는 건 돈지X 이란다. 세상에....난 그동안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문득 나 스스로가 바보스럽게 여겨졌다.
그렇다. 어쩌면 돈지X이 맞겠다. 격하게 표현 하자면 촬영과 인화가 편리한 디지털을 놔두고 굳이 아날로그를 선택할 이유는 없다. 솔직히 고백컨데 필름과 디카의 오묘한 색감 차는 그저 느낌으로 알 뿐이니 말이다. RGB값이 어떻다거나 CMYK값 같은 걸 들어 디지털보다 필름이 더 우수하다고 주장할 지식도 없다. 부끄럽지만 안드로메다 만큼이나 먼 나라 이야기이다. 그러니 필름 이미지를 고수해야 하는 이유도 필름 시대의 종언을 슬퍼해야 할 이유도 딱히 없다. 오히려 손쉽고 편리한 그리고 많은 면에서 월등한 디지털의 도래를 쌍수들어 환영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럼에도 반동분자는 여전히 서글프다. 옛 추억의 향수 때문이 아니다. 복고에 대한 동경 때문도 아니다. 단지 이것은 진지함의 시대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데에 느끼는 두려움이다. 가장 빛나는 순간을 기다리고, 얼마 남지 않은 필름의 수을 머리 속으로 헤아리며... 결국 가장 결정적인 모멘트를 기대하는 인간에 대한 오마쥬가 섞여 있는 두려움이다. 좀 거창하게 들리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실제로 필름 카메라는 그렇다. 촬영자는 자신이 찍은 사진 이미지를 어림직잠하고 결과물을 기다리며 반성한다. 좀 더 다가갔어야 하는 건 아닌지. 빛이 강했던 것은 아닌지. 상대방이 자연스러워 했는지... 모든 것은 반성과 회의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반복과 시행착오를 통해 비로소 상상 이미지와 현실 이미지는 가까워 진다. 현상과 인화의 순간도 마찬가지다. 붉은 암등 아래 인간은 고요해지고 숨죽여 이미지의 탄생을 지켜본다. 적막 속에서 가장 외롭고 겸손한 인간이 되어 서서히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을 곱씹어 볼 뿐이다. 그렇게 카메라를 손에 쥔 자는 성숙해간다.
하지만 아쉽게도 필름 카메라가 인간을 성숙시켜준다는 논리는 99.9999% 가설일 뿐이다. 아니 거짓이겠다. 그러니 디지털카메라가 인간을 경박하게 만들고 있다는 논리도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단지 나는 필름 카메라를 사랑한 나머지 그를 위한 마지막 변론을 전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대세를 거스르는 변명처럼 말이다.
그러나 누가모래도 나는 그 나머지 0.0001%의 가능성을 믿고싶다. 0.000001%이라도 나는 그 세계가 전하려 했던 것은 분명 이 시대와는 다른 무언가라고 믿고 싶은게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이 변명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 진지함이 사라져가는 시대를 바라볼 용기가 나질 않기 때문이다.









덧글
Qyoun 2008/11/22 19:21 # 답글
필름카메라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인 것 같아요. 워낙 요즘 어려우니까 점점 장사 안되는 것도 이해하지만, 안하는 것과 못하는 건 다른거니까요. 진짜 슬픈 글입니다. ㅠㅠ
9625 2008/11/22 19:46 # 답글
전 디카가 없습니다.캐논SLR+50mm단렌즈 하나
촛점만 맞춰주면 되는 미놀타 RF 하나
완전자동 펜탁스 하나.
(덤으로 컴팩트한 삼성 케녹스 하나)
흑백은 확실히 디지털보다 필름이 우월합니다.
하지만 컬러는 그런것 같지도 않아요.
그래도 그냥 필카로 찍습니다. 이유는 그냥 좋으니까.
식빵곰 2008/11/22 21:38 # 답글
삼성사가 자리를 옮겼군요. 앞으로도 갈 일은 안생길 것 같지만.... 반년 전인가 동네 사진관에서 증감현상을 요구했더니 아저씨가 '좀 더 큰 곳을 찾아봐라'라고 이야기하셔서 마음이 아팠던 적이 있습니다. 필카를 사용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blackmoon 2008/11/22 22:30 # 답글
To. Qyoun님그렇죠. 사실 저 역시 정말 오랫만의 인화였기 때문에 충격이 더했나 봅니다.
그래서 더 이렇게 과장된 글을 썼나봐요.
To. 9625님
전 사실 디카도 있고 필카도 있는데 결국은 디카는 기념일날을 위한 촬영용 이상으로 쓰기가 힘들거라구요. 뭐 아직까지는 사진 그 자체를 업으로 하지 않으니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죠...
To. 식빵곰님
삼성사가 자리를 옮긴건 이미 2년이던가 3년전이랍니다. 정말 순식간이죠.
요즘은 포토피아마저 사라질까봐 마음이 두근두근한답니다. 휴...
닭고기 2008/11/23 00:19 # 답글
아... 저도 디에쎄랄 없이 필름카메라를 유유히 쓰고 있습니다만. 정말 공감가는 글이네요.. 삼성사가 옮겼다는 부분을 보고 놀랐어요.^^; 저번주에 다녀왔는데 그새 다른 곳으로 또 옮겼나? 했거든요.ㅎㅎ저도 생각해보니, 왜 필름카메라를 고집 하고 있는 건지 선뜻 대답하기 힘드네요.그저 '지키고 있다'라는 기분 떄문일까요. 언젠가는 필름카메라의 시대가 사라질 날이 오겠죠? 그렇게 생각하니 씁쓸해지네요.
드레이크 2008/11/23 00:57 # 답글
전 펜탁스 스팟매틱쓰고 있는데...뭐랄까 디카도 있지만 필카가 왠지 더 좋아요. 아직 구도도, 노출도 잘 모르지만 일단 찍어보고 아 이건 이렇게 찍었으면 더 좋았을걸, 이런식으로 한 컷, 한컷이 좀더 소중하게 느껴져서 그런가봐요;
2008/11/23 00:58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Nobody 2008/11/23 00:59 # 답글
펜탁스mx 유저입니다슬프네요
삼성사는 괜찮을 것 같았는데..
그래도 인터넷 필름가게는 잘된다고하는 얘기를 들은 것 같네요
chungsuk 2008/11/23 05:41 # 답글
저도 3년전에는 G1을 썼었어요. 지금은 T3 사용 중이고요... 일반 똑딱이에 풀프레임이 달려나오기 전까지는 쓸 거 같네요. 그래도 필름의 색감은 어쩌지 못하는데..아아.
freax 2008/11/23 19:13 # 답글
의외로 펜탁스 유저가 많네요. mz-3유저입니다.뭐 이런저런 이유로 필름을 고집하고는 있습니다만, 조금씩 밀려나는 기분이 들어 디지털로의 기변을 가끔씩(아주 가끔씩) 생각하고는 있습니다만.
디지털의 쨍한느낌과 필름의 서글서글한 맛중에 고르라면 필름의 서글서글함을 뽑겠습니다.
blackmoon 2008/11/23 21:12 # 답글
To. 닭고기님한 3년전 삼성사가 옮긴 걸로 알고 있습니다. 종로 3가 일대에는 서울상사, 삼성사, 청운사 이렇게 세 군데가 필름과 약품에 관해서 꽉 잡고 있던 시절이 있었죠...아 이렇게 쓰고 나니 굉장히 올드한 느낌이군요...
To. 드레이크님
저 역시 필름 카메라의 따뜻한 느낌을 좋아합니다. 색상을 디테일하게 잡을 수는 없어도 오히려 뭉개지는 맛이 필름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느낌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거죠...허허허...
To. 비공개님
저 역시 대부분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는 하는데...그리 부지런한 편이 못되서 그런지 일일이 스캔을 할 수는 없더라구요...게다가 제대로 스캔까지 하려면 돈도 돈이고 말이죠...언젠가 친구가 디카와 필카 어떨때 나눠 쓰냐고 하길래 맘 편하게 조금 성의껏 찍고 싶으면 필카, 기념촬영용이면 디카라고 한 말이 떠오르네요...
To. Nobody님
그렇죠. 이제는 모든게 인터넷의 시대죠...근데 인터넷으로 구매하면 왠지 그 맛이 없잖아요....눈앞에 펼쳐진 필름들의 환영 같은거...허허...
To. chungsuk님
저 역시 G1을 쓰고 있답니다. T3는 허허...
근데 우습죠? 사람들이 필름카메라의 진화를 이야기 할때 언제나 색상 재현도. 선예도를 따지면서 정작 최고의 정밀함을 보유한 디카는 왠지 외면하게 된다는게 말이죠...
To. freax님
그렇네요. 제 친구도 펜탁스 MX를 쓰고 있는데...
저는 사진을 니콘 FM2로 시작했어요...
아무튼 뭐 필름카메라 홍보대사도 아닌데....이렇게 필름 카메라 예찬을 하고 있네요....허허...
djccuri 2008/11/24 08:29 # 답글
요즘은 홈플러스에서 필름 한통에 5,000원 내면 CD로 구워주는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우울하죠. 필카로 찍어서 CD로 구워주는 파일을 보는 기분이란... 이상합니다. 디카가 편한데 필카로 찍습니다.빛을 예측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피사체에 다가가고, 철컥, 하고 셔터의 기계 진동을 손을 느끼고, 인화되어 나올때까지 그 느낌을 간직하다가, 또 새로운 느낌으로 사진 한장을 바라볼 때의 기분. 디카로는 안되더군요.
필카 얘기 오랜만에 봐서 월요일부터 괜히 설레입니다^^
blackmoon 2008/11/24 10:30 # 답글
To. djccuri설레이셨다는 말 듣고 저도 기분좋은 월요일이 될 것 같습니다.
디카로는 맛볼 수 없는 필름만의 세계. 당연하지만 당연한게 사라지는 요즘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