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동화, 렛 미 인

< Lat Den Ratte Komma In >
토마스 알프레드슨 연출. 2008

스크린 위로 하얀 눈송이가 흩날립니다.
이제 곧 환상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듯이.
아름다운 주문이 시작되는 것 처럼 말이죠.

하지만 정적을 깬 소년의 주문은 다름 아닌 저주입니다.
'돼지처럼 꽥꽥 소리 질러'

(이제부터 스포일러만이 전부인 글이 펼쳐집니다.)


영화 <렛 미인>은 무척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영상미 뿐 아니라 내용상으로도 말이죠. 바스라질듯한 북유럽의 겨울밤을 담고있는 이 영화는 스웨덴 작가 욘 린퀴비스트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개의 영화가 그러하듯 원작의 아우라를 그대로 옮겨왔는지는 판단 유보의 상황이지만, 이 영화는 오히려 원작의 내용 일부를 수정하고 또 빼버리면서 더 많은 독법과 상징을 가능케했습니다. (사실 원작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단언할 수는 없겠네요.) 그런 까닭에 우리는 이 영화를 두고 잔혹한 동화 혹은 슬픈 사랑이야기라고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상징과 비유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간단한 편입니다. 
학교 폭력을 당하고 있는 소년 '오스칼'이 뱀파이어 소녀 '이엘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 전부인 셈이죠. 하지만 이미 영화평론가 듀나가 지적했듯이 뱀파이어 소녀와 인간 소년의 사랑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앙겔라 좀머-보덴부르크의 <꼬마 흡혈귀>시리즈와는 사뭇 다릅니다. 보덴부르크의 꼬마 드라큘라가 인간의 친구가 되고자 한 안전한 존재라고 한다면, 렛미인의 이엘리는 그 자체로 위험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연쇄 살인마와 다를 바 없습니다. 다만 연쇄 살인마와 차이를 둔다면 이엘리의 살인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는 점입니다.

뱀파이어 소녀 이엘리를 향해 오스칼이 사랑을 느끼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어쩌면 애초부터 소년은 자신의 편이 되어줄 누군가를 그토록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돼지처럼 꽥꽥 소리 질러'라는 그 날밤의 저주는 뱀파이어 이엘리를 소환하는 주문이 됩니다. 그리고 루빅스 큐빅의 한 조각이 제자리를 찾아들어가듯이 (let the right one in) 소년의 마음 속에 소녀 이엘리가 들어서게 됩니다. 또 인간의 음식을 먹고, 초대받지 않은 인간 영역에 다가서는 (뱀파이어의 장르적 금기이기도 합니다.) 이엘리의 무모한 시도는 사랑의 시험대를 통과했음을 알리는 증거가 됩니다. 그 시험대를 오스칼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말이죠. 오스칼 역시 시험대에 오릅니다. 그것은 이엘리의 고백으로 부터 시작되는데 가장 먼저 '난 평범한 여자애가 아니야.', ' 내가 여자애가 아니어도 괜찮아'라는 질문이 그것이죠. 특히 동성애자 아버지를 의심케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면, 또 그로 인해 가정의 불화를 겪고 있을 범한 상황을 추론해 본다면 오스칼의 '괜찮다'라는 대답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어떤 이들은 이 영화를 성정치학적인 영화로 이해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인물이 빠졌습니다.
바로 이엘리의 보호자 '호칸'입니다. 모든 뱀파이어 영화에서 뱀파이어의 조력자들처럼 호칸 역시 희생자를 찾아 겨울 밤 거리를 헤메입니다. 다른 점이라면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이들의 살인은 철저하게 생존을 위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생존을 위한 살인인 만큼 영화 렛미인 속 가해자가 느끼는 죄책감의 강도는 일반적인 호러영화의 주인공들보다 어마어마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살인광이 아닌 이상에야 살기위해 남을 죽여야 한다는 건 그야말로 천형이라 할 수 밖에요. 그럼에도 호칸에게 이러한 죄책감이 묘사되는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이엘리의 경우는 단 한 번인데... 그렇다고 한다면 호칸이야 말로 절대 악이거나 아니면 죄책감마저 감내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이는 나중에 오스칼도 동일하게 겪는 심리적 상황입니다.)

물론 호칸을 아버지라고 가정한다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즉, 뱀파이어 딸을 둔 아버지의 부생육기가 되는 것이죠. 그 가운데 오스칼 역시 다소 과격한 성장기를 맞고 있는 것이며, 오스칼과 이엘리의 미래 역시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 다소 낙관적인 결말을 예상해 볼 수 있구요. 하지만 이러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호칸과 이엘리의 관계를 부녀와 연인 그 한가운데 위치 시킵니다. 피를 공수하는 데 실패한 호칸에게 퍼붓는 이엘리의 질책, 또 오스칼을 향한 호칸의 질투가 둘 사이가 부녀지간이 아니라는 믿음을 공고하게 만드는 증거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비극적이지만 오스칼의 현재는 호칸의 과거입니다. 더욱이 오스칼의 미래는 호칸의 현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인정하기 싫겠지만 오스칼 또한 위대한 사랑의 이름으로 죄책감을 극복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실제로 오스칼이 이엘리를 구하고 또 이렐리가 오스칼을 구하는 과정에서 살인은 필연적으로 그 둘을 따라 붙습니다, 하지만 그들만의 세상 속에서 이러한 살인은 사랑의 시련이 아닌 시험대로서 기능합니다.  

영화는 이 슬픈 운명의 반복을 시퀀스의 수미상관으로 대신합니다. 창가에 서성이는 오스칼의 모습이 바로 그것인데 각각 영화의 도입과 말미에 등장하면서 운명의 순환을 극단적으로 상징하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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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어떤 글에서는 영화가 끝나고 타이틀이 올라가는 도중에 검은 화면-붉은 화면-다시 검은 화면으로 변하는 스크린 색상이 운명의 수미상관을 묘사한 감독의 재치가 아닐까 하고 의문을 품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마지막 기차 안에서 그 둘이 나누었던 모르스 부호의 뜻은 '키스'였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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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8/12/22 21:10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blackmoon 2008/12/22 21:38 # 답글

    To. 비공개님
    까딱까딱....(물론 손가락질이죠..)
  • 완소엘리... 2009/01/05 20:26 # 삭제 답글

    저희 지역에서는 렛미인이 상영되지 않아 어둠의 루트 로 이영화를 봤

    는데... 너무 후회가 되네요...

    그래도 저에게는 남는 장면 수영장에서의 엘리의 눈빛이 기억에 남는군요.

    아 그리고 엘리는...거세당한 소년으로...호칸은 원작에서 소아성애자로 나온

    다고합니다.

    마지막 모스부호 가 키스를 나타낸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습니다.^^

    감사 합니다.^^
  • 곽 진 2009/01/06 23:24 # 삭제 답글

    하하,,,저는 아바게서 보지말래서 안보는데.... 솔작히 넘 보고싶음
  • blackmoon 2009/01/07 01:14 # 답글

    To. 완소엘리 님
    더 큰 스크린에서 보셨다면 스웨덴의 시린 밤하늘을 더 아름답게 느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감독이 소아 성애자라는 기호를 빼놓았던 건 아마도 더 많은 상상의 영역을 남겨놓고 싶었던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blackmoon 2009/01/07 01:15 # 답글

    To.곽진 님
    2008년에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보실 기회가 있다면 놓치지 마세요...허허...영화 홍보하는 사람같네요...
  • 캐독고랭보 2009/07/18 19:28 # 삭제 답글



    오스칼이 창백한낯빛,
    이엘리의 깊고 강한눈빛,
    아련하고 시린 손,
    그들의 편애적사랑,


    저도 지금까지 본 영화중 최고의 영화였습니다.




  • blackmoon 2009/07/25 16:02 # 답글

    To. 캐독고랭보님
    좀 부끄럽긴해도 최근에 수업시간에 장르영화분석을 하기 위해서 렛미인을 대상으로 했었죠...허허...다자이 오사무와 렛미인 뭔가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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