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에 대한, 바흐를 위한 영상 시, <바흐 이전의 침묵>

바흐 이전의 침묵 . Die Stille vor Bach
페레 포르타베야. Pere Portabella
2007. 102 min

  생전에 바흐는 훌륭한 오르간 연주자이자 하프시코드 연주자로만 알려져 있었다. 이미 당대에 최고의 음악가로 인정받은 베토벤, 천재라는 별칭을 달고 살았던 모차르트와 달리 바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변방의 작곡가로 살았던 것이다. 무한 변주와 무한 반복으로 구성된 토카타와 푸가, 신성함과 순수함이 전부인 종교 음악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결론적으로 그는 당대엔 그닥 인기없는 별볼릴 없는 작곡가일 뿐이었다. 사업수완 역시 별로였다. 20명이나 딸린 자식들을 양육하기 위해 그의 악보는 싼값에 팔아넘겨으며 자식들 역시 악보를 팔아치우는데 급급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바흐가 죽고 나자 그의 작품들은 하루 아침에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의 음악이 다시금 주목받게 된 건 그로 부터 100년이 지나서였다. 이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멘델스존의 하인이 어느날 동네 푸줏간에서 고기 한 덩어리를 샀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고기를 두른 종이엔 음표가 그려져 있었다. 이를 수상히 여긴 하인은 멘델스존에게 그 종이뭉치를 내밀었고, 그 누런 종이 위엔 '요한 세바스찬 바흐, 마태가 전한 복음서에 의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곡'이라는 글씨가 적혀있었다. 바흐의 음악이 100년만에 모습을 드러내는 극적인 장면인 것이다. 물론 과장된 부분이 있을테고 전설처럼 전해지는 바 모든 게 사실은 아닐테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멘델스존은 이후 바흐의 음악을 연주하고 발굴하였으며 이로 인해 바흐의 음악은 완전히 재평가받기에 이르렀다. 또 바흐에게 '음악의 아버지'라는 위대한 이름을 붙여준 이 역시 멘델스존이었다. (실제로 멘델스존은 그가 남긴 음악과 함께 중요하게 거론되는 음악사적 업적이 바흐 음악의 발굴과 재평가이다.) 

바흐 이전의 침묵 . Die Stille vor Bach
페레 포르타베야. Pere Portabella
2007. 102 min

  이렇게 뜬금없이 바흐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은 다름 아닌 어제, <바흐 이전의 침묵>이라는 영화를 보았기 때문이다. 루이 부뉘엘, 카를로스 사우라와 함께 영화를 만들기도 한 스페인 출신의 영화 제작자이자 연출가인 페레 포르타베야의 신작인 이 영화는 이미 2008년 전주국제 영화제에서 소개된 바 있다.(2009년에도 다시 한 번 상영되었다.) 페레 포르타베야는 주로 정치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들을 만드는 자기 색채가 강한 감독으로 알려져 있는데, 내게는 매번 일정이 허락하질 않아 관람을 포기해야 했던 비운의 감독이기도 했다. (비운의 감독이 아닌 비운의 관람객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듯 하지만 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 영화는 바흐에 대한 영화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바흐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이자 테마인 셈이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영화를 10번 본다해도 바흐라는 인물의 전기를 알 수 없다. 바흐라는 인물을 떠올릴 수 있는 친절한 단서는 몇 개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바흐는 서사의 뒤 편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감독은 오히려 시공을 초월한 점프 컷으로 바흐의 음악을 영화 전면에 이끌어낸다. 그리고 음악을 통해 서사 아니 이미지는 연결된다. 도대체 '하늘에서 떨어진 피아노', '마장마술 말의 미려한 움직임'그리고 '폭풍우가 휘몰아 치는 심야의 주차장'이라는  이 미스테리한 시퀀스와 몽타쥬들이 음악없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겠는가. 결국 이것을 하나로 묶는 것은 다름 아닌 바흐의 음악이다. 물론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한 발 더 나아가 바흐의 음악은 마법처럼 시각화되기에 이른다. 영화의 도입부가 바로 그것인데, 어느 텅빈 공간, 갤러리처럼 보이는 어느 미지의 공간으로 카메라는 미끌어지듯 흘러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카메라, 아니 관객은 피아노를 마주하게 된다. 천공에 의해 자동으로 연주되는 피아노인데 피아노는 서서히 앞으로 밀려든다. 마치 100년전 세상을 향해 제 존재를 들어낸 바흐의 악보들처럼 말이다. 갤러리를 울리는 바흐의 골드베르그 연주곡. 신기하게도 이 텅빈 장소는 음악으로 충만해진다. 물론 이것은 청각적인 의미에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음악은 매우 구체적이고 시각적인 방식으로 재현되는 듯 하며 공간은 부풀어 오른다. 물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바흐의 음악일 뿐이다. 
 
  <카핑 베토벤>이나 <아마데우스>처럼 내러티브를 기대하는 관객들에게는 영화는 다소 엉뚱하기까지 하다. 아니 상징주의 영화들에 익숙한 관객들 조차 영화의 이미지들을 두고 이는 바흐 음악에 대한 상징이다 혹은 은유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듯 하다. 단지 영화는 바흐의 음악을 통해 시공간을 가로지를 뿐이다. 또 매우 성실하고 정돈된 방식으로 그의 음악을 화면위로 흩뿌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바흐에 대한 영화이지만 바흐를 위한 영화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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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올해는 멘델스존 탄생 200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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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흐에 대한, 바흐를 위한 영상 시, <바흐 이전의 침묵> 2009/07/09 19:48 #

    이 영화는 바흐에 대한 전기영화도 아니고, 음악사에 대한 영화도 아닙니다. 다만 바흐의 음악을 통해 이미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는, 바흐에 대한 영화라고 하는군요; 클래식 애호가가 아닌 사람들에겐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네요. ... more

덧글

  • 2009/07/09 16:49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blackmoon 2009/07/10 01:49 # 답글

    To. 비공개님.
    문제가 될 리가 있나효...단지 첨이라...허허...
  • 먹여살려줍소서 2009/07/10 11:42 # 삭제 답글

    오빠는 그래도 이 영화를 볼 수 있었지만, 나는 그마저도 못했으니 이 감독에겐 정말 비운이 따르는 듯.
    오늘도 덥고 습한 날씨때문에 꼼지락대는 하루가 될 것 같아. 오늘 저녁에 이 영화 보면 좋을꺼 같은데..
  • blackmoon 2009/07/10 12:30 # 답글

    To. 먹여살려줍소서
    오늘 저녁에 데리러 갈께.
    근데 하루 세끼 부럽다.ㅎㅎ
  • 캐독고랭보 2009/07/11 02:14 # 삭제 답글

    바흐의 음악이 대위법처럼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는..
    하지만 시적인 제목 만큼 거대한 울림은 업써서 아쉬웠다는...
    지나가다가 그만...낄낄
  • blackmoon 2009/07/12 12:42 # 답글

    To. 캐독고랭보님
    사실 저도 바흐의 무반주 첼로를 듣는 듣한 뭔가 묵직한 이야기가 있을 줄 알았었지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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